내 성격과 반복
암록이라 굶어 죽진 않는다는 웨딩 기사의 겨울 통장
제 사촌 동생 도경이는 결혼식 철이 끝나는 11월마다 통장이 바닥나는데, 그때마다 어디선가 일이 들어와 일곱 해를 버텼어요. 그게 정말 암록 덕인지, 그리고 지금 대운에서는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도경이 명식으로 따져 봤어요.
글쓴이 유선우
이번 달 셋째 주 일요일에 도경이는 하루에 본식 두 건을 찍고 저희 집에 들렀다가, 카메라 가방을 끌어안은 채 소파에서 그대로 잠들었어요. 두 시간쯤 자고 일어나더니 물부터 찾고는 휴대폰을 저한테 내밀더라고요. 사주 앱 화면이었는데, 자기 명식에 암록이 있고 암록은 숨은 복이라 위기 때마다 누가 도와준다는 풀이가 떠 있었어요. "형, 나 이거 있대. 굶어 죽진 않는 팔자래. 그러니까 올겨울도 어떻게든 돼." 그 말을 듣는데 웃음이 안 나왔던 건, 도경이가 지난 일곱 겨울을 실제로 어떻게 넘겼는지 제가 다 봤기 때문이에요.
도경이는 스물다섯에 웨딩 영상 일을 시작했는데, 결혼식은 봄과 가을에 몰리니까 4월부터 10월까지는 주말마다 두세 건을 찍고 평일엔 밤새 편집을 해요. 그러다 11월이 되면 예약이 뚝 끊기고, 잔고가 30만 원 아래로 내려가는 게 거의 해마다 같은 순서였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쯤이면 꼭 뭔가가 들어왔어요. 한 해는 돌잔치 촬영 업체 사장님이 겨울 내내 일을 몰아줬고, 한 해는 예전 신랑이 회사 송년회 영상을 맡겼고, 작년에는 이모가 아무 말 없이 도경이 카드값 140만 원을 갚아 두셨더라고요. 저는 그걸 운이 좋거나 도경이가 사람한테 잘해서 그런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암록이라는 말을 듣고 나니 명식을 직접 뽑아 보고 싶어졌어요.
제가 도경이를 보면서 늘 걸렸던 건 돈보다 몸이었어요. 시즌 내내 하루 네 시간을 자다가 11월 첫 주가 되면 꼭 몸살로 사흘을 누워 있었거든요. 도경이는 휴대폰 배터리가 1%가 돼야 충전기를 찾는 사람처럼 살았는데, 그 1%에서 누군가 매번 충전기를 꽂아 주니까 자기가 그렇게 산다는 걸 모르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그 충전기가 어디서 오는지 명식에서 확인해 보기로 했어요.
월지에 숨은 녹, 갑목의 돼지
도경이는 1994년 11월 14일 오전 10시 20분에 서울에서 태어났고, 엔진으로 뽑은 명식은 갑술년, 을해월, 갑진일, 기사시예요. 태어난 날의 글자가 갑목이니까 도경이는 큰 나무에 해당하는 사람이에요. 사주에서 녹은 원래 옛날 관리가 받던 녹봉, 그러니까 내가 내 힘으로 받는 월급 같은 자리를 말하는데, 갑목에게 그 녹은 호랑이 글자예요. 암록은 이 호랑이와 짝을 맺는 글자를 가리키고, 갑목에게는 그게 돼지예요. 보통은 숨은 귀인이 있는 팔자, 굶어 죽지는 않는 팔자라고 알려져 있는데, 저는 이름 그대로 읽는 게 맞다고 봐요. 내 손으로 받는 녹이 아니라 짝을 통해 들어오는 녹이라서, 남의 손을 거쳐 조용히 들어오고 내 몫이 비었을 때 더 잘 보인다는 뜻이에요.
도경이 명식에서 그 돼지는 태어난 달 자리에 앉아 있어요. 그런데 갑목에게 돼지는 편인이라는 자리에 해당하고, 편인은 나를 먹이고 챙겨 주는 쪽, 어머니나 나를 아끼는 어른처럼 예상 밖에서 손을 내미는 힘이에요. 그러고 보니 일곱 겨울을 살린 사람들이 다 그랬어요. 돌잔치 업체 사장님은 도경이를 조카처럼 부르는 분이고, 카드값을 갚은 건 이모였으니까요. 반대로 여덟 글자를 다 훑어봐도 도경이 자신의 녹인 호랑이는 한 글자도 없었어요. 내 이름으로 받는 월급 자리는 비어 있고, 남이 채워 주는 자리만 있는 명식이었던 거죠.
11월의 돼지와 2월의 호랑이
여기까지 읽고 저는 도경이한테 "그럼 넌 원래 남이 먹여 살리는 팔자네" 하고 웃었는데, 대운표를 내려 보다가 말이 막혔어요. 대운은 십 년마다 바뀌는 큰 흐름인데, 도경이는 2022년 여름부터 무인 대운에 들어와 있었거든요. 원래 명식에 없던 호랑이, 그러니까 자기 녹이 대운으로 들어와 2032년까지 앉아 있는 거예요. 게다가 호랑이와 돼지는 서로 짝이니까, 지금 십 년은 숨은 녹과 자기 녹이 처음으로 붙어 있는 때예요. 남이 채워 주던 자리를 자기 이름으로 바꿀 수 있는 때가 이미 4년째 와 있는데, 도경이는 그걸 여전히 바닥까지 기다렸다가 구조받는 데 쓰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날짜로 말해 줬어요. 올해 11월 7일 저녁 입동부터 12월 7일 대설 전까지는 기해월이라 돼지가 한 번 더 들어오는 달이고, 저는 올겨울에도 누가 도경이한테 일을 줄 거라고 봐요. 다만 그 도움을 또 겨울 버티는 돈으로만 쓰면 남은 대운 여섯 해를 똑같이 1%에서 1%로 넘기게 될 거예요. 그 달에 돌잔치 사장님이 연락해 오면 땜빵 촬영만 받지 말고 내년 한 해 달마다 고정으로 찍는 계약을 먼저 꺼내라고 했어요. 그리고 2027년 2월 4일 오전 입춘부터 3월 6일 경칩 전까지는 임인월, 호랑이가 달로 한 번 더 겹치는 때라서 그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에 제일 좋은 달이에요. 사장님이 그 제안을 받아 줄지는 사주가 알려 주지 않아요. 하지만 누가 먼저 꺼내야 하는지는 명식에 나와 있고, 지난 일곱 해 동안 도경이는 한 번도 먼저 꺼낸 적이 없었어요.
도경이는 한참 대운표를 들여다보다가 휴대폰으로 사장님 대화창을 열었어요. "사장님, 내년에는 달마다" 까지 쳐 놓고 손을 멈추더니, 11월에 보내겠다며 화면을 끄고 다시 소파에 누웠어요. 저는 그 문장을 지우지 않고 남겨 둔 게 마음에 들었어요. 다음 날 아침 도경이는 제 집 현관에서 신발을 신다가, 올해는 11월 첫 주에 몸살 나기 전에 사흘을 먼저 쉬겠다고 하더라고요.
글쓴이
유선우
심리 회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