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성격과 반복
화개살이라 외로운 팔자라는 말과 토요일마다 잠긴 방문
같이 사는 은재가 화개살이 두 개라 외롭게 살 팔자라는 말을 듣고 토요일마다 소개팅을 나가기 시작했어. 화개살이 정말 혼자 늙는다는 표시인지, 은재 명식 하나를 놓고 끝까지 따져 봤어.
글쓴이 해월
은재 방에서는 토요일 오후마다 사각사각 판화 다듬는 소리가 났어. 출판사에서 책 표지를 만드는 애가 주말이면 방문을 잠그고 판화 작업에 몰두하는 거야. 그런데 그 소리가 3주째 안 났어. 대신 토요일 두 시쯤이면 현관에서 구두 굽 소리가 났고, 밤 열 시가 넘어 돌아온 은재는 화장도 안 지우고 소파에 엎어져서 "사람은 괜찮았는데 왜 이렇게 피곤하냐"는 말만 했지. 세 번째 토요일에는 내가 끓여 둔 라면 국물이 짜다고 짜증을 냈는데, 은재가 남이 해 준 음식에 토를 다는 건 같이 산 2년 동안 처음 봤어.
그래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추석에 엄마 손에 끌려 동네 철학관에 갔었대. 거기서 "화개살이 두 개나 있어서 외롭게 살 팔자고, 절에 들어갈 사주"라는 말을 들었고, 엄마는 그날 밤부터 이모들한테 소개팅 자리를 부탁했다는 거야. 은재는 웃으면서 얘기했는데 손으로는 휴대폰 케이스 모서리만 계속 뜯고 있더라. 나는 신당에서 화개살 소리를 지겹도록 듣는 사람이라, 두 개라는 말에 오히려 궁금해져서 생년월일부터 달라고 했지.
꽃 덮개라는 이름의 화개살
은재는 1994년 3월 1일생이고 태어난 시간은 몰라. 그래서 시주는 비워 두고 세 기둥만 뽑았더니 갑술년, 병인월, 병술일이 나왔어. 은재는 병화, 그러니까 한낮의 햇볕 같은 불로 태어났고, 태어난 해와 태어난 날 아래에 똑같이 개가 앉아 있었어. 철학관에서 말한 두 개가 바로 이 두 마리 개였던 거지.
화개살은 한자로 꽃 화에 덮을 개를 써. 원래는 귀한 사람 머리 위에 씌우던 화려한 덮개를 가리키는데, 사주에서는 띠나 태어난 날의 글자를 셋씩 묶는 무리(삼합)에서 마지막 글자를 화개로 봐. 호랑이·말·개가 한 무리니까 끝자리 개가 화개가 되고, 돼지·토끼·양 무리에서는 양이 화개가 되는 식이라 화개가 될 수 있는 글자는 용, 개, 소, 양 네 개뿐이야. 이 네 글자는 계절이 끝날 때마다 하나씩 붙어서 한 철 동안 벌어진 일을 거둬 창고에 넣는 자리라서, 화개는 밖으로 뻗는 기운보다 안으로 모아 덮어 두는 기운에 가까워.
그런데 세상에는 화개살이 고독과 종교, 철학의 별로 알려져 있잖아. 스님이나 작가한테 많고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서 외로움을 탄다는 설명이 기사에도 그대로 실려. 혼자 있는 시간이 길다는 데까지는 맞는 말인데, 거기서 "그러니까 외롭게 산다"로 건너뛰는 게 문제야. 화개는 혼자 있는 시간에 뭔가를 만들어 내는 사람한테 붙는 표시이고, 곁에 사람이 안 붙는다는 표시로 읽을 근거는 명식 어디에도 없거든.
은재 명식에서 그 화개가 무슨 일을 하는지 보면 더 분명해져. 개는 병화인 은재에게 식신에 해당하는데, 식신은 내 안에 있는 걸 손으로 밖에 꺼내 놓는 힘이야. 은재는 그 식신이 화개 자리에 두 번, 그것도 태어난 날 바로 아래에 앉아 있으니까 덮개 밑에서 혼자 손을 움직여야 기운이 도는 사주인 거고, 토요일마다 방문을 잠그고 판화를 다듬던 시간이 딱 그 덮개였던 거야. 사주를 뽑아 보기 전부터 은재 몸은 이미 그걸 알고 있었던 셈이지.
소개팅 세 번과 다시 잠긴 방문
그래서 나는 은재한테 토요일을 소개팅에 갖다 바치는 게 이 사주로 할 수 있는 제일 손해 보는 짓이라고 말했어. 덮개 밑 시간을 뺏긴 화개는 사람을 만나도 가진 걸 못 꺼내 놓으니까, 상대가 괜찮아도 집에 와서 엎어지고 라면 국물에 짜증이 나는 거야. 신당에서 굿이 끝나면 상 위 음식을 보자기로 덮어 두는데, 덮어야 할 때 안 덮은 음식이 제일 먼저 쉬거든. 3주 동안 은재 주말이 꼭 그 꼴이었어.
태어난 날 아래 글자는 배우자 자리이기도 해서 그 얘기도 해 줬어. 은재 배우자 자리에 덮개가 있다는 건, 같이 살 사람이 잠긴 방문을 견딜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야. 토요일마다 방에 들어가는 걸 서운해하는 사람이랑은 오래 못 가고, 문 앞에 커피 한 잔 두고 돌아설 줄 아는 사람이면 그다음은 둘이 알아서 하면 돼. 그런 사람을 언제 만나는지, 결혼을 하는지는 명식에 적혀 있지 않아. 철학관에서 들은 외로운 팔자라는 말도 거기서 나온 게 아니고.
은재는 그 주에 엄마한테 전화해서 소개팅은 평일 저녁으로만 잡아 달라고 했어. 엄마가 뭐라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전화를 끊고 "수요일 일곱 시래" 하고 말하는 은재 얼굴은 나쁘지 않았어. 그리고 토요일 오후 두 시가 됐는데 현관에서 구두 소리가 안 났어. 대신 은재 방에서 사각사각 소리가 다시 났고, 저녁때 문을 열고 나온 은재 손바닥에는 먹이 잔뜩 묻어 있었지. 그날 라면 국물도 짰는데, 은재는 아무 말 없이 다 마셨어.
글쓴이
해월
무속 · 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