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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띠 11월 운세 사해충에 취소한 김장 100포기
뱀띠는 11월에 사해충이 드니 집안에 큰일을 벌이지 말라는 띠별 운세를 읽고, 서른 해 해 온 김장 100포기를 취소한 친구 어머니가 있었어요. 어머니 명식을 펴 보니 그 충이 걸리는 자리는 김장하는 집이 아니라 친정 쪽 일이더라고요.
글쓴이 장태오
지난 목요일 밤에 군대 동기 현수한테서 캡처 두 장이 왔어요. 하나는 해남 배추 농장에 보낸 취소 문자였고, 다른 하나는 어머니 휴대폰에 떠 있던 띠별 운세 화면이었죠. 11월 21일 토요일에 받기로 한 절임배추 100포기를 어머니가 그날 오후에 취소하셨는데, 이유를 물었더니 뱀띠는 11월에 충이 들어서 큰일을 벌이면 탈이 난다고 하셨대요. 현수네 김장은 제가 아는 것만 해도 십 년째 11월 셋째 토요일에 같은 마당에서 하는 일이었어요. 현수네와 현수 누나네가 그 김치로 겨울을 나고, 저도 두 해 전에 한 통 얻어 온 적이 있거든요.
"태오야, 엄마가 올해는 사 먹재. 근데 이거 진짜야? 충이라는 게 그렇게 센 거야?"
현수 목소리는 반쯤 웃고 있었는데 저는 웃을 수가 없었어요. 충은 제가 일하면서 제일 자주 다루는 말이고, 손님들이 제일 크게 겁먹는 말이기도 하거든요. 다만 겁낼 충과 그냥 지나가도 되는 충은 명식을 펴 봐야 갈리니까, 어머니 생년월일부터 물었어요. 1965년 양력 10월 27일이고, 태어난 시간은 어머니도 모르신다고 했어요.
띠 자리에 걸린 사해충과 집 자리의 호랑이
충은 열두 띠 글자 가운데 정반대에 놓인 두 글자가 맞부딪치는 관계를 말해요. 뱀을 뜻하는 사와 돼지를 뜻하는 해가 그런 짝이라서, 둘이 만나면 사해충이라고 부르죠. 그런데 2026년 사주의 11월이 바로 돼지 달인 기해월이에요. 사주의 달은 1일이 아니라 절기에 바뀌기 때문에 올해 기해월은 입동인 11월 7일 저녁 6시 53분에 시작해서 12월 7일 대설 전까지 이어지는데, 그 한 달 동안 돼지 글자가 들어오니 뱀띠는 누구나 충을 맞는다는 게 띠별 운세의 계산이에요. 거기까지는 틀린 말이 아니에요.
문제는 띠가 사주 여덟 글자 가운데 한 글자일 뿐이라는 데 있어요. 사주는 태어난 해와 달과 날과 시를 각각 두 글자씩 적은 네 기둥인데, 띠는 그중 해 기둥의 아래 글자거든요. 사주픽 엔진으로 어머니 명식을 뽑으니 을사년 병술월 갑인일이 나왔고, 시는 모르니 비워 두고 세 기둥만 읽었어요. 뱀은 맨 앞 해 기둥에 하나 있을 뿐이에요. 해 기둥은 보통 윗대와 친정, 내가 태어난 집안처럼 지금 내 살림보다 한 겹 바깥에 있는 울타리로 읽어요. 반면에 어머니가 지금 사는 집과 어머니 자신은 날 기둥의 아래 글자인 일지로 보는데, 그 자리에는 호랑이를 뜻하는 인이 앉아 있어요. 그리고 호랑이 인과 돼지 해는 부딪치는 짝이 아니라 서로 끌어당겨 붙는 짝, 육합이에요.
솔직히 저도 캡처만 봤을 때는 어머니 쪽 말이 맞다고 생각했어요. 위기 보는 사람 버릇이라 충이라는 글자가 보이면 일단 판을 줄이라는 말부터 나오거든요. 그런데 명식을 펴니까 그림이 반대였어요. 11월에 들어오는 돼지는 어머니 집 자리와는 붙고 친정 자리와만 부딪쳐요. 충이 집 전체를 흔드는 게 아니라 문 하나를 두드리는 거라면, 이번 달 두드리는 건 부엌문이 아니라 친정 대문인 거죠. 김장은 어머니가 자기 마당에서 자기 식구 먹일 걸 담그는 일이니 딱 일지 쪽 일이고요.
친정 선산 동의서와 21일 기해일
그래서 현수한테 혹시 11월에 친정 쪽 일이 있느냐고 물었어요. 현수가 잠깐 말이 없더니, 외삼촌들이 외할아버지 산소가 있는 선산을 팔기로 해서 어머니가 도장 찍을 동의서가 11월 중순에 온다고 하더라고요. 어머니는 김장은 무서워서 취소하면서 그 서류는 형제들끼리 정한 일이니 찍어 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계셨대요. 저한테는 그쪽이 훨씬 걸렸어요. 사주가 그 땅값이 적당한지까지 알려 주지는 않지만, 친정 자리가 흔들리는 달에 친정 형제들 사이에 돈이 오가는 서류에 도장부터 찍는 건 제가 손님한테 제일 먼저 막는 일이거든요.
그러고 나서 어머니가 취소한 날짜를 다시 봤는데, 11월 21일 일진이 기해였어요. 그날의 위 글자 기토는 어머니 일간인 갑목과 합을 이루고, 아래 글자 해는 일지 인과 육합을 이뤄요. 위아래 두 글자가 한꺼번에 어머니 날 기둥에 붙는 날인 데다, 기토는 갑목에게 정재라서 손에 쥐고 꾸리는 살림 돈을 뜻하니까 집안 살림을 크게 한 번 치르는 날로는 이만한 날이 드물어요. 해마다 셋째 토요일로 잡아 온 김장 날이 올해는 하필 그날이었던 거예요.
토요일 낮에 현수네 들렀더니 어머니는 식탁에서 고무장갑 두 켤레를 앞에 두고 띠별 운세 화면을 다시 보고 계셨어요. 저는 앉자마자 결론부터 말씀드렸어요. 김장은 21일에 그대로 하시고, 선산 동의서는 12월 7일 대설이 지나고 받으시라고요. 12월 7일 낮 11시 53분부터는 경자월이라 쥐 글자가 들어오는데, 쥐는 어머니의 뱀과도 호랑이와도 부딪치지 않아요.
"충 든 달에 김장을 하라고?"
"충은 어머니 띠에 들었지 부엌에 든 게 아니에요. 도장은 미루세요, 김장은 하시고요."
어머니는 한참 화면을 내려다보시더니 휴대폰을 뒤집어 놓고 농장 번호를 누르셨어요. 다행히 취소 처리가 아직 안 돼서 100포기가 그대로 남아 있었고, 어머니는 통화를 끊자마자 큰외삼촌한테 서류는 12월에 보내 달라고 문자를 쓰셨어요. 현수는 옆에서 21일 아침 일곱 시까지 오라며 제 몫의 고무장갑을 식탁 너머로 밀어 주더라고요.
글쓴이
장태오
무속 · 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