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 모임에서 여러 부탁을 받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가방을 메고 떠나는 사주픽 캐릭터 한소은
가족·친구·직장 사람

좋은 사람 역할, 이제 그만하고 싶다면

거절하면 미움받을까 봐 남의 일까지 또 떠안았다면 마음이 약해서만은 아니에요. 내 몫을 챙기는 말보다 남의 부탁을 내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습관이 먼저 움직였기 때문이거든요.
글쓴이 한소은
지난주 금요일 저녁에 옥상 모임이 끝나갈 무렵이었어요. 다들 빈 잔을 두고 일어날 준비를 하는데, 모임 총무를 맡은 선배가 다음 달 워크숍 숙소 예약을 누가 할지 묻더라고요. 눈이 마주친 순간 제 입에서 또 "제가 알아볼게요"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어요. 사실 그날도 회사에서 팀장이 급하다고 넘긴 보고서를 대신 쳐내고 온 길이었고, 주말에는 친언니가 아이를 봐 달라고 해서 내내 시간을 비워 둔 상태였거든요. 싫다고 말하면 무능한 직원으로 찍힐 것 같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남을 것 같아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창문에 비친 제 얼굴을 보니 화조차 낼 기운이 남아 있지 않았어요.
더 답답한 건 그렇게 일을 다 떠안고 난 뒤의 제 모습이었어요. 아무도 억지로 시키지 않았으니 누구한테 따질 수도 없어서 혼자 속으로만 삭이다가, 어느 순간 단톡방 알림을 끄고 연락을 피해 버리거든요. 상대방은 영문도 모른 채 서운해하고, 저는 또 그 차가워진 공기를 못 견뎌서 먼저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일이 몇 년째 되풀이됐어요. 좋은 사람으로 남으려던 선택이 결국 제일 가까운 사람들과의 사이까지 망가뜨리는 걸 보면서, 왜 내 사주에는 늘 남의 짐만 붙는지 처음부터 다시 짚어 보게 됐어요.

부탁이 곧장 내 책임으로 바뀌는 관성과 인성의 걸음

사주에서 이런 버릇을 볼 때는 흔히 말하는 착한 팔자 타령으로 끝내지 않아요. 바깥의 규칙과 책임을 의식하는 관성, 남의 사정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인성, 그리고 내 생각과 한계를 밖으로 꺼내는 식상과 내 몫을 지키는 비겁이 어떤 순서로 움직이는지를 먼저 살피거든요. 관성이 또렷한 사람은 맡은 일을 끝까지 해내고 약속을 어기지 않는 든든한 동료지만, 부탁을 들었을 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가보다 내가 마땅히 해야 하는가를 먼저 떠올리기 쉬워요. 상대는 가볍게 던진 제안인데 내 귀에는 나를 평가하는 시험 문제처럼 들리는 거죠.
여기에 남의 사정을 잘 헤아리는 인성까지 빠르게 맞물리면 거절할 타이밍은 아예 사라져요. 친언니가 토요일에 아이 맡길 곳이 없다고 한숨을 쉴 때, 내 주말 약속도 소중하다는 생각을 올리기 전에 언니가 얼마나 급할까 하는 마음이 먼저 자리를 차지해 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하루 일정을 통째로 지우고 언니한테는 괜찮다고 안심시켜 놓고선, 정작 밤이 되면 사라진 내 주말이 억울해서 잠을 설치게 돼요. 사주가 보여 주는 건 남의 사정을 이해하는 마음이 내 시간과 한계를 지워 버리는 그 빠른 속도예요.

감정이 터지기 전에 내 몫의 선을 긋는 식상의 한마디

이 고리를 끊으려면 안에 쌓인 생각을 말로 꺼내는 식상과 내 몫을 따지는 비겁을 부탁받는 그 자리에서 바로 써야 해요. 가족 모임을 준비할 때도 식당 예약과 참석자 확인, 정산을 혼자 다 끌어안았다가 당일에 왜 나만 일하냐고 터뜨리면, 수고는 수고대로 하고 원망만 듣게 되거든요. 반대로 처음 부탁이 들어왔을 때 식당 예약은 내가 할 테니 참석자 확인은 동생이 맡아 달라고 범위를 잘라 말하면, 책임을 피하지 않으면서도 내 숨통을 지킬 수 있어요.
회사에서도 일을 잘 나누는 사람과 혼자 밤새우는 사람의 차이는 실력보다 첫 대답의 선명함에 있어요. 내가 다 처리하는 게 빠르다며 일을 가져온 뒤 속으로만 남들이 나를 이용한다고 미워하기보다, 어디까지가 내 담당이고 기존 일 가운데 무엇을 덜어낼지 처음부터 말로 못 박아 두는 편이 서로에게 훨씬 깔끔하죠. 물론 거절했다는 이유로 부당한 불이익을 주거나 위협하는 곳이라면 말투를 고칠 것 없이 그 자리를 벗어나는 게 먼저예요. 내 사주의 책임감은 남의 심부름을 공짜로 해 주라고 있는 힘이 아니니까, 다음 부탁 앞에서는 해 줄지 말지 고민하기 전에 내가 감당할 크기부터 또렷하게 말해 보세요.
사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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