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친구·직장 사람
백호대살이라 금지된 정육점 칼
백호대살이 두 개라 칼을 잡으면 피를 본다는 말 때문에, 제 외사촌 동생 한결이는 스물아홉 해 동안 과도 한 번 제대로 쥐어 본 적이 없어요. 그 한결이가 회사를 그만두고 발골을 배우겠다고 나섰을 때, 장사하는 사람 눈으로 그 애 명식을 끝까지 따져 봤어요.
글쓴이 오세진
외숙모가 저한테 부탁한 건 딱 하나였어요. 너는 가게 하는 사람이니까 정육점 일이 얼마나 험하고 돈이 안 되는지 한결이한테 숫자로 말해 달라는 거였죠. 그런데 통화가 길어질수록 외숙모가 정말 걱정하는 건 돈이 아니라는 게 들렸어요. 한결이 돌 무렵에 외할머니가 철학관에 다녀와서는 이 애는 백호가 둘이라 칼을 잡으면 피를 본다고 하셨고, 그날 이후로 집에서 한결이 손에 칼이 쥐어진 적이 없었다는 거예요. 사과는 늘 외숙모가 깎아 줬고, 중학교 미술 시간에 조각칼을 쓰는 날이면 담임 선생님께 전화를 해서 다른 과제로 바꿔 달라고 부탁하셨대요.
그 얘기를 들으면서 저도 반쯤은 외숙모 편이었어요. 식품회사 영업을 오 년 했으면 이제 대리를 달 때인데, 발골은 새벽에 시작해서 손목이 먼저 나가는 일이고 처음 이 년은 월급도 회사 때의 절반쯤이거든요. 그래서 토요일 아침에 마장동에 있는 한결이네 가게로 찾아갔는데, 한결이는 소 앞다리 한 짝을 작업대에 올려놓고 힘줄을 따라 칼끝을 밀어 넣고 있었어요. 회사 다닐 때 명절마다 보던, 말끝을 흐리던 애가 아니었어요. 쉬는 시간에 왜 하필 이 일이냐고 물었더니 한결이가 장갑을 벗으면서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오 년 동안 제가 만든 게 하나도 없었어요. 여기선 저녁이 되면 제가 나눈 고기가 진열장에 다 있어요."
일곱 개의 날, 백호대살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외할머니가 말씀하셨다는 백호를 제대로 찾아봤어요. 백호대살은 육십갑자 가운데 일곱 개, 갑진·을미·병술·정축·무진·임술·계축에 붙는 이름이에요. 보통은 피를 보는 살로 알려져 있어서, 연주에 있으면 조상이, 일주에 있으면 배우자가 다친다는 식으로 자리마다 무서운 풀이가 붙어 다니죠. 그런데 이 일곱 개가 어디서 나왔는지 따라가 보면, 아홉 칸짜리 판에 육십갑자를 차례로 놓았을 때 한가운데 칸에 떨어지는 간지들이에요. 판의 한가운데에 갇혀 사방이 막힌 자리라서 흉하다고 본 거고, 이 사람이 언제 다친다는 계산에서 나온 이름과는 거리가 먼 거죠.
한결이는 1997년 5월 11일생이고 태어난 시각은 아무도 몰라서, 시주는 비워 두고 연주·월주·일주만 뽑았어요. 정축년 을사월 계축일인데, 연주의 정축과 일주의 계축이 둘 다 그 일곱 개에 들어 있으니 외할머니 말씀대로 백호가 두 개인 건 맞아요. 그래서 저는 계축이라는 일주 안을 들여다봤어요. 한결이는 계수라는 물로 태어났는데, 그 물이 깔고 앉은 소 안에는 기토라는 젖은 흙이 제일 크게 들어 있어요. 물에게 흙은 자기를 막아서는 힘이고, 사주에서는 이렇게 나를 세게 누르는 글자를 편관이라고 불러요. 한결이 명식에서는 그 편관이 태어난 날 자리와 태어난 해 자리에 하나씩 앉아 있고, 엔진으로 따진 일간의 힘은 약한 쪽으로 나왔어요.
옛날 사람들이 백호를 보고 피를 떠올린 건 아마 이 무게 때문일 거예요. 힘이 약한 물이 자기 자리에서부터 흙에 눌려 있으니, 그 무게가 풀릴 데가 없으면 사람이 다치거나 일이 터지는 쪽으로 읽었던 거죠. 그렇다면 남는 질문은 한결이 사주에 이 무게를 덜어 낼 손이 있느냐는 거였어요.
흙을 파는 손, 을목 식신
한결이가 태어난 달의 천간에는 을목이 하나 있어요. 계수 입장에서 을목은 자기 물을 먹고 밖으로 뻗어 나가는 풀이라서 식신이라고 부르는데, 식신은 내 안에 있는 걸 손으로 만들어 내놓는 힘이에요. 그리고 나무는 흙을 뚫고 들어가니까, 이 을목이 한결이를 누르는 기토를 직접 파고드는 자리에 있는 셈이에요. 그러니까 한결이 사주는 편관이 누르고 식신이 그걸 깎아 내는 모양으로 짜여 있고, 둘 중 식신이 일을 안 하면 누르는 쪽만 남아요.
회사에서 오 년이 딱 그랬던 것 같아요. 분기마다 매출 목표가 내려오고 거래처 단가 협상에 끌려다니는 건 편관이 하는 일인데, 정작 한결이 손으로 끝까지 만들어 내놓는 일은 하나도 없었으니까요. 장사하면서 제가 제일 무서워하는 게 팔리지 않는 재고가 창고에 쌓이는 건데, 한결이한테는 쓰이지 않은 식신이 그런 재고였던 거예요. 제가 보기에 외할머니가 이십구 년 동안 막아 온 건 이 사주에서 무게를 덜어 낼 유일한 손이었어요.
물론 사주는 한결이가 다음 달에 손을 베일지 말지까지 알려 주지 않아요. 그건 장갑을 끼는 습관과 칼을 가는 실력이 정할 일이고, 처음 들어간 가게에서 선배들한테 맞는 순서대로 배우는 게 백호를 피하는 어떤 부적보다 확실해요. 그래서 제가 한결이한테 건넨 조언도 장사 현장의 이야기였어요. 지금 가게에서 이 년은 남의 칼질을 보면서 버티고, 그동안 고기를 받아 줄 식당 세 곳을 네 이름으로 잡아 두기 전에는 간판을 달지 말라고요.
외숙모한테는 그날 저녁에 전화로 이 얘기를 그대로 전했어요. 한참 말이 없으시더니 다음 주 토요일에 마장동에 같이 가자고 하셨고, 가게에 들어서서는 진열장 앞에 서서 한결이가 앞다리살을 써는 걸 끝까지 지켜보셨어요. 그러고는 장조림 할 거니까 한 근만 달라고 하셨는데, 한결이가 비닐봉지를 건넬 때 외숙모가 그 애 손등부터 먼저 보시는 게 제 자리에서도 보였어요.
글쓴이
오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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