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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을귀인 떴다고 귀인 기다리면 옆자리 귀인만 놓친다
천을귀인 떴다고 석 달 동안 밋업 명함만 모은 후배가 있어요. 그사이 그 표시가 아예 없는 개발자는 옛 사수 전화 한 통 받고 회사를 옮겼고요.
글쓴이 kang-siwoo
천을귀인 떴다고 석 달 동안 밋업 명함만 모은 후배가 있어요. 그사이 그 표시가 아예 없는 개발자는 옛 사수 전화 한 통 받고 회사를 옮겼고요.
지난주 목요일 밤, 을지로 노가리 골목이었어요. 플라스틱 의자에 앉자마자 하은이 고무줄로 묶은 명함 뭉치를 테이블에 툭 올려놓더라고요. 그 옆엔 만세력 화면을 켜 둔 휴대폰.
"선배, 이거 세어 봤는데 마흔세 장이에요. 석 달 동안."
하은은 전 회사에서 제 밑에 있던 PM이에요. 서른하나. 일은 빠른데 회사 운이 없는 편이라 지금 다니는 곳에서도 1년째 이직 얘기를 하고 있었죠. 그러다 여름에 만세력 앱에서 자기 사주 밑에 뜬 네 글자를 봤대요. 천을귀인.
"귀인 붙는 사주래요. 그니까 이게, 사람을 많이 만나야 걸리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밋업이란 밋업은 다..."
말이 거기서 멈췄어요. 노가리가 나왔고, 하은은 명함을 한 장씩 넘기면서 누가 누군지 기억 안 나는 얼굴을 몇 개 댔어요. 커피챗도 몇 번 했는데, 그 뒤로 먼저 연락 온 사람은 없었대요.
제가 하는 일이 회사들 영업 파이프라인 손보는 거라, 그 뭉치가 저한텐 리드 마흔세 개로 보였어요. 전부 콜드 리드. 이름 한 번 들은 사람한테 "혹시 자리 나면"을 보내는 건 영업에서 전환율이 제일 낮은 칸이거든요.
"근데 도현 씨 알죠? 우리 팀 백엔드. 걔 지난달에 나갔어요. 전 사수가 전화해서 데려갔대요. 걔는 사주 앱 깔아 본 적도 없는데."
하은이 제일 억울해한 건 그 대목이었어요.
둘 중 하나는 받는 표시
천을귀인은 사주에서 신살이라고 부르는 표시 중 하나예요. 이름 그대로, 곤란할 때 도와주는 귀한 사람이 붙는다는 뜻이죠. 이름이 이렇게 그럴듯하니 앱 화면에 뜨면 다들 한 번씩 캡처해요.
판정 방식은 단순해요. 사주는 태어난 해·달·날·시, 네 기둥으로 되어 있고 기둥마다 위아래 두 글자가 있어요. 띠가 바로 태어난 해 기둥의 아래 글자고요. 태어난 날의 위 글자가 무엇이냐에 따라 귀인 글자가 두 개씩 정해져 있는데, 내 네 기둥의 아래 글자 중에 그게 하나라도 끼어 있으면 천을귀인이 떠요.
하은은 경금(庚) 날에 태어났어요. 경금의 귀인 글자는 소(丑)와 양(未). 하은은 태어난 달의 아래 글자가 양이라서 표시가 떴어요. 한 자리, 딱 거기.
문제는 이게 드문 표시가 아니라는 거예요. 85년생부터 04년생까지 날짜와 태어난 시간을 다 넣어 명식을 세어 보면 46%에 이 표시가 떠요. 둘 중 하나. 그날 그 골목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들도 절반은 귀인 붙은 사주였을 거예요.
게다가 경금 날 태어난 사람은 옛 책마다 귀인 글자가 다르게 적혀 있어요. 말(午)과 호랑이(寅)로 읽는 판본을 따르면 하은이 석 달을 건 그 표시는 아예 안 뜨고요. 저는 소·양 쪽으로 보는데요, 그래도 표시 하나에 석 달을 걸기엔 근거가 얇죠.
표시가 없는 쪽
도현 얘기를 듣고 솔직히 저는 도현 사주에 천을귀인이 있을 줄 알았어요. 전 사수가 먼저 전화해서 데려가는 사람이면 그런 게 하나쯤 있겠지 싶어서요. 생년월일을 받아서 뽑아 봤는데 없더라고요.
도현은 임수(壬) 날에 태어났어요. 임수의 귀인 글자는 뱀(巳)과 토끼(卯)인데, 도현의 네 기둥 아래엔 원숭이와 용만 두 번씩 있어요. 뱀도 토끼도 없죠. 표시가 안 뜨는 게 맞아요.
그다음엔 도현을 데려간 사수 생일을 물어봤어요. 문지혜 팀장. 팀 생일 케이크를 챙기던 사람이라 도현이 날짜를 바로 대더라고요. 89년생 뱀띠. 태어난 달도 뱀, 태어난 날도 뱀. 도현의 귀인 글자 하나가 그 사람한테 세 번 들어 있었어요.
거기서 헷갈리던 게 풀렸어요. 천을귀인 표시는 내 사주 안에 귀인 글자가 들어 있느냐만 봐요. 내 곁에 그 글자를 가진 사람이 있느냐는 표시에 안 나오죠. 옛사람들은 이 글자를 사람 보는 데도 썼어요. 내 귀인 글자를 띠나 태어난 날에 가진 사람을 나를 돕는 쪽으로 본 거예요.
그렇다고 뱀띠면 다 도현을 돕는 건 아니에요. 89년에 태어난 사람은 전부 뱀띠니까요. 지혜 팀장이 전화한 건 도현이 새벽 장애 알림을 한 번도 안 넘기고 받던 후배였기 때문이지, 띠 때문이 아니에요. 글자는 누구를 먼저 볼지 범위를 좁혀 줄 뿐이고,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봐 왔는지는 사주에 안 나와요.
귀인은 밖에서 새로 걸리는 사람이 아니에요. 이미 연락처에 있는 사람 중에서 골라내는 거죠.
소띠 파트장
하은한테 귀인 글자 두 개를 알려 줬어요. 소, 양. 명함 뭉치 말고 지금 회사 사람 중에 소띠나 양띠가 있는지부터 보라고 했죠.
하은이 사내 메신저를 한참 내리다가 멈췄어요.
"...오상철 파트장님. 85년생. 소띠네."
옆 팀 사업개발 파트장이래요. 하은 말로는 회식 때 말이 길고, 회의에서 예전 얘기를 자주 하는 사람. 제휴 일을 오래 해서 업계에 아는 회사가 많은 사람이기도 하고요. 회사에서 이런 사람이 제일 과소평가돼요. 회의에서 말 길다고 꼰대 소리 듣는데, 밖에 전화 돌릴 데는 제일 많은 사람이거든요.
두 달 전 엘리베이터에서 그 파트장이 "하은 씨 요즘 표정 보니까 나갈 생각 있지? 있으면 말해, 아는 데 몇 군데 있어" 했을 때, 하은은 웃고 넘겼대요. 그 주에 밋업이 두 개 잡혀 있어서요.
"아니 근데, 그 사람이 진짜 귀인이면..."
"귀인인지는 몰라. 근데 마흔세 장보다는 먼저 볼 사람이지."
콜드 리드 마흔세 개를 돌리는 동안, 옆 팀에 웜 리드 하나가 두 달째 그냥 놓여 있었던 거예요.
그날은 거기서 일어났어요. 다음 날 오전에 하은한테서 카톡이 왔어요. 파트장한테 보낸 메시지 캡처였어요. "파트장님, 지난번에 말씀하신 거 아직 유효할까요?" 그 밑에 답장이 붙어 있었고요. "점심 먹자. 이력서 들고 와."
명함 뭉치는 아직 하은 가방에 있대요. 고무줄도 그대로.
글쓴이
강시우
사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