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성격과 반복
양인살 여자의 숨겨 둔 칼
'양인살 여자'를 검색하고 밤새 기 센 팔자라는 말만 읽다가 팀장 자리를 거절하려던 후배가 있었어요. 같은 양인을 가진 친구는 응급실에서 그 칼을 매일 쓰고 있었는데, 두 사람 사주를 나란히 놓고 보니 칼이 놓인 자리와 칼을 받아 줄 글자가 달랐어요.
글쓴이 정유원
대학 후배 다인이한테서 카톡이 온 건 화요일 새벽 두 시쯤이었어요. 검색 결과 화면을 캡처한 사진이 다섯 장 연달아 왔는데, 전부 '양인살 여자'를 검색한 화면이었고 "기가 세서 남편을 누른다", "고집 때문에 혼자 된다" 같은 줄에 다인이가 직접 빨간 줄을 그어 놨더라고요. 다인이는 서른두 살이고 화장품 브랜드에서 6년째 마케팅을 하고 있는데, 석 달 전에 4년 만난 남자친구와 헤어졌어요. 헤어질 때 그 사람이 "너랑 있으면 늘 내가 지는 기분이야"라고 했다는 얘기는 저도 그때 들었고요. 그런데 다인이가 그날 밤 그 화면들을 뒤진 이유는 따로 있었어요. 팀장이 육아휴직에 들어가면서 다인이에게 팀장 대행을 맡아 달라고 했는데, 다인이는 그걸 거절하려던 참이었거든요.
다음 날 점심에 만나서 왜 거절하냐고 물었더니 다인이가 한참 젓가락만 만지작거리다가 말했어요. "언니, 나 회사에서는 진짜 순하게 지내려고 엄청 애써. 근데 팀장까지 하면 그게 다 들통날 것 같아. 그럼 회사에서도 기 센 여자 되는 거잖아." 듣고 있자니 이상했어요. 제가 아는 다인이는 회의에서 말을 아끼는 쪽이었고, 그 대신 집에 가면 남자친구한테 그날 쌓인 걸 한꺼번에 쏟아 낸다는 얘기를 몇 번 했었으니까요. 그래서 생일과 태어난 시간을 받아서 사주를 뽑아 봤어요.
칼집 없는 칼, 다인이의 양인
다인이는 1994년 5월 20일 오후 두 시 십 분에 태어났고, 사주는 갑술년 기사월 병오일 을미시로 나와요. 태어난 날의 글자, 그러니까 다인이 자신을 뜻하는 글자는 병화인데, 병화는 한낮의 해 같은 불이에요. 그 바로 아래, 태어난 날의 땅 자리에 말이 앉아 있는데 이게 양인이에요. 양인은 내 기운이 가장 센 자리를 한 칸 더 넘어간 글자라서, 옛 책 『삼명통회』는 이걸 칼날 인 자로 적고 기운이 제 분수를 넘어서 위태롭다고 설명했어요. 병화에게는 말이 그 자리예요.
요즘 검색하면 나오는 '양인살 여자' 풀이는 대개 기가 세다, 남편 잡는다, 혼자 산다는 쪽으로 흘러가요. 그런데 같은 책을 조금 더 읽어 보면 양인을 칼집과 같이 봐요. 편관이라는 글자, 쉽게 말해 나를 세게 누르고 시험하는 압박이 사주에 같이 있어야 그 칼이 위엄이 되고, 편관 없는 양인은 위엄이 서지 않는다고 적혀 있어요. 칼이 흉한지는 칼을 받아 줄 상대가 있느냐로 갈린다는 얘기라서, 저는 이 대목에서 다인이 사주를 다시 봤어요. 다인이 사주에는 병화를 누르는 물 기운, 그러니까 편관이든 정관이든 관성이 여덟 글자 어디에도, 땅속에 숨은 글자에도 하나도 없었어요.
게다가 양인이 앉은 자리가 태어난 날의 땅 자리였어요. 명리에서는 이 자리를 나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 흔히 배우자가 앉는 자리로 읽어요. 다인이의 칼은 밖에서 받아 줄 상대가 없는 채로 제일 가까운 사람 옆에 놓여 있었던 거예요. 회사에서 순하게 지내려고 꾹 누른 힘이 어디로 갔는지, 그리고 왜 남자친구가 늘 지는 기분이 들었는지가 거기서 보였어요.
응급실의 경금, 선영이의 양인
이 얘기를 하다 보니 고등학교 친구 선영이가 떠올랐어요. 선영이는 서른네 살이고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11년째 간호사로 일하는데, 사주를 뽑아 보면 임신년 기유월 경인일 병술시예요. 선영이 자신은 경금, 단단한 쇠인데 경금의 양인인 닭이 태어난 달 자리에 있어요. 달 자리는 사회에서 일하는 모습으로 많이 읽는 자리고요. 그리고 태어난 시간의 하늘 글자에 병화가 떠 있는데, 이게 경금에게 편관이에요. 다인이에게 없던 칼집이 선영이에게는 있었던 거죠.
선영이를 응급실에서 본 적이 한 번 있는데, 구급차가 연달아 들어오던 밤에 누구부터 볼지 큰 소리로 정하고 보호자들을 복도 끝으로 돌려보내는 사람이 선영이였어요. 그날 선영이한테 무섭다고 했더니 "여기서 내가 안 무서우면 사람이 다쳐"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선영이 남편 말로는 집에 오면 선영이가 저녁 메뉴 하나 고르는 것도 남편한테 맡긴대요. 제가 사람들 마음 상한 얘기를 오래 듣다 보니 흉살이라는 말 자체가 그 살보다 사람을 더 상하게 하는 걸 자주 보는데, 선영이는 양인이 뭔지 몰라도 그 칼을 매일 밖에서 다 쓰고 들어오는 사람이었어요.
두 사람 사주를 나란히 놓고 보니 칼의 크기는 비슷했고 차이는 놓인 자리에 있었어요. 선영이는 칼이 일하는 자리에 놓였고 그 칼을 받아 줄 편관이 있었으니까 응급실이라는 압박 속에서 칼을 썼고, 다인이는 칼이 가장 가까운 사람 자리에 놓였는데 받아 줄 글자가 없으니 칼을 숨길수록 집으로 갔던 거예요. 사주는 다인이가 팀장을 잘할지, 그 팀이 성과를 낼지까지는 말해 주지 않아요. 다만 칼을 어디에 둘지는 분명히 보여 줬어요.
그래서 다인이한테 그대로 말했어요. 사주에 칼집이 없으면 칼집을 밖에서 구해야 하는데, 마감이 있고 숫자로 평가받고 내가 결정해야 하는 자리가 바로 그 칼집이라고요. 기 센 여자 소리 듣기 싫어서 회사에서 칼을 숨기면 그 칼은 또 집에 있는 다음 사람한테 간다고, 팀장 대행은 네가 먼저 잡아야 하는 자리라고 했어요. 다인이는 한참 말이 없다가 "그럼 회사에서 무서운 사람 돼도 돼?" 하고 물었고, 저는 선영이 말을 그대로 전해 줬어요.
다인이는 그 주 금요일에 팀장 대행을 맡겠다고 답했어요. 2주 뒤에 온 카톡에는 첫 회의에서 미뤄지던 신제품 일정을 혼자 잘라서 마감을 정했다는 얘기와 함께, 요즘은 퇴근하고 집에 오면 할 말이 별로 없어서 그냥 잔다는 말이 붙어 있었어요.
글쓴이
정유원
심리 회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