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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 경계 11분에 갈린 조카의 이름
절기가 바뀌는 날 태어난 아이는 몇 분 차이로 사주의 달이 통째로 바뀌는 사주 경계에 걸려요. 제 조카는 한로 11분 뒤에 태어났는데, 언니가 작명소에서 받아 온 종이에는 한로 전에 태어난 아이의 사주가 적혀 있었고 이름 후보 세 개가 모두 그 사주에 맞춰져 있었어요.
글쓴이 백도화
조카가 태어난 10월 8일 오후, 저는 회사 회의실에 앉아 있다가 형부가 보낸 문자를 받았어요. 산모도 아기도 건강하다는 말 아래에 "3시 41분 출생"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저는 축하한다는 답장보다 휴대폰 메모장을 먼저 열었어요. 사람들 운이 바뀌는 해와 달을 짚는 일을 오래 하다 보니 해마다 절기가 드는 시각을 분 단위로 적어 두는 버릇이 있거든요. 그 메모에 올해 한로는 10월 8일 오후 3시 30분으로 적혀 있었으니, 조카는 한로가 들고 11분 뒤에 나온 셈이었어요. 그날은 그냥 늦가을 개의 달에 태어났구나 하고 혼자 웃고 말았는데, 그 11분이 다시 문제가 된 건 일주일 뒤였어요.
언니가 산후조리원에서 사진을 한 장 보냈는데, 친정엄마가 다니시는 작명소에서 받아 온 종이였어요. 맨 위에 조카의 사주 여덟 글자가 인쇄돼 있고, 그 아래에 "흙과 물이 하나도 없으니 재물이 머물 땅을 이름으로 채운다"는 풀이와 함께 흙을 뜻하는 한자가 들어간 이름 후보 세 개가 적혀 있었죠. 언니는 그중 두 번째가 제일 예쁘다며 이걸로 출생신고를 하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사진을 키워 보니 달 자리에 정유라는 두 글자가 찍혀 있었어요. 정유는 닭의 달이고, 닭의 달은 한로가 들기 전까지예요. 그래서 종이 귀퉁이를 다시 봤더니 작은 글씨로 "보정 시각 15시 09분"이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오후 3시 30분이라는 사주 경계
사주에서 달은 매달 1일에 바뀌지 않고 절기가 드는 순간에 바뀌어요. 절기는 태양이 하늘에서 정해진 자리에 오는 시각이라, 달력의 날짜보다 훨씬 촘촘하게 분 단위로 떨어지죠. 올해는 그 순간이 10월 8일 오후 3시 30분이었으니, 그날 3시 29분에 태어난 아기는 닭의 달인 정유월이 되고 3시 31분에 태어난 아기는 개의 달인 무술월이 돼요. 같은 날 같은 병원에서 태어나도 몇 분 차이로 여덟 글자 가운데 두 글자가 통째로 바뀌는 건데, 이 지점을 흔히 사주 경계라고 불러요. 그러니 절기 당일에 태어난 사람은 시각을 분 단위로 넣지 않으면 자기 것이 아닌 사주를 받아 들 수 있어요.
작명소 종이가 틀린 이유는 보정 시각 15시 09분에 다 들어 있었어요. 우리나라 시계는 서울보다 한참 동쪽 지방의 해에 맞춰져 있어서, 서울에서 해가 실제로 하늘 꼭대기에 오는 시각은 시계보다 30분 남짓 늦어요. 그래서 사주의 시를 정할 때는 태어난 시각에서 32분쯤을 빼고 보는데, 이건 서울의 해가 하루 중 어디쯤 있었는지를 따지는 일이라 시주에만 쓰는 계산이에요. 그런데 이 종이는 32분을 뺀 3시 9분을 한로가 든 3시 30분과 견줘서, 아직 한로 전이라고 판단해 버렸어요. 절기는 열차가 역을 통과하는 순간 같은 거라서 서울 시계로 보든 부산 시계로 보든 지나간 순간은 하나뿐인데, 조카의 출생 시각만 혼자 32분 앞으로 끌어당겨 한로 21분 전으로 만들어 버린 거죠. 다행히 시주는 보정을 해도 안 해도 원숭이 시인 갑신시로 같았으니, 이 종이에서 잘못된 건 달 기둥 하나였어요. 문제는 그 하나가 여덟 글자 중에 가장 무거운 자리라는 거였어요.
흙이 두 개 들어앉은 개의 달
달 자리는 그 사람이 어떤 계절의 기운 속에서 태어났는지를 보여 주는 곳이라, 사주를 읽을 때 일간 다음으로 먼저 봐요. 조카의 일간은 을목인데, 을목은 큰 나무보다는 풀이나 덩굴처럼 휘면서 자라는 나무예요. 작명소 종이대로 닭의 달이었다면 이 풀은 가을 쇠 기운 한가운데 서 있는 셈이고, 여덟 글자 안에 흙과 물이 하나도 없으니 둘 중 재물이 된다는 흙을 이름으로 채우자는 풀이도 그 종이 안에서는 앞뒤가 맞아요. 그런데 엔진으로 3시 41분을 그대로 넣어 다시 뽑아 보니 조카의 사주는 병오년 무술월 을묘일 갑신시였어요. 달 자리의 무토와 개가 둘 다 흙이니, 없다던 흙이 사주 한복판에 두 개나 들어앉아 있었던 거예요.
그 흙 두 글자는 조카에게 정재에 해당해요. 정재는 내가 직접 손에 쥐고 꾸준히 관리하는 재물이라, 늦가을 마른 땅을 넓게 깔고 태어난 이 풀은 쥘 것이 이미 많은 아이로 읽혀요. 정작 여덟 글자 어디에도 없는 건 물이에요. 을목에게 물은 인성, 그러니까 나를 받쳐 주고 길러 주는 힘이라서 공부나 어른의 도움이 들어오는 자리인데, 넓은 땅에 물기 없이 선 풀이니 이 아이에게 모자란 건 땅보다 물이에요. 그래서 이름에 오행을 담겠다면 물을 넣는 게 맞다고 저는 판단했어요. 흙 이름은 이미 땅이 두꺼운 사주에 흙을 한 겹 더 얹는 일이니까요.
언니한테 전화를 걸어 그대로 말했더니 언니는 한참 말이 없다가 "두 번째 이름 진짜 예뻤는데" 하더라고요. 이름이 사주를 바꾸지 않는다는 것도 언니한테 솔직하게 말했어요. 여덟 글자는 10월 8일 3시 41분에 이미 정해졌고 이름은 그 위에 붙이는 거라서, 어떤 이름을 고르든 조카가 개의 달에 태어난 을목이라는 사실은 그대로예요. 다만 오행을 이유로 이름을 고를 거라면 그 이유가 조카의 사주에서 나와야지, 한로 전에 태어난 다른 아이의 사주에서 나오면 안 되잖아요. 언니는 예쁜 이름을 버리는 게 아까운 거였지 제 말이 틀렸다고 생각한 건 아니어서, "엄마한테는 네가 말해" 하고 전화를 넘겼어요.
다음 날 아침 친정엄마가 작명소에 전화를 하셨고, 작명소에서는 출생 시각을 다시 받아 적더니 무술월로 새로 뽑아 이번 주 안에 후보를 다시 주겠다고 했대요. 그날 오후에 조리원에 들렀더니 언니는 작명소 종이를 뒤집어 놓고, 그 뒷면에 "무술월, 한로 11분 뒤"라고 볼펜으로 크게 적어 두었더라고요. 조카는 그 종이 옆 속싸개 안에서 주먹을 꼭 쥔 채 자고 있었고, 언니는 그 주먹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면서 "얘는 쥔 게 많다며, 물만 주면 된다며" 하고 웃었어요.
글쓴이
백도화
총운 · 타이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