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친구·직장 사람
장성살인데 8년째 총무
장군 별이라는 장성살을 가진 친구가 8년째 동아리 모임 회비만 걷고 있었어요. 같은 장성살을 가진 다른 동기는 회장이 됐는데, 두 사람의 차이는 장성살이 앉은 자리와 그 자리의 글자에서 갈렸어요.
글쓴이 한소은
지난 일요일 오후에 성수동 카페에서 수빈이를 만났어요. 수빈이는 대학 산악 동아리 동기고, 지금은 가구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서른한 살이에요. 졸업하고 동아리 OB 모임이 생긴 뒤로 8년째 총무를 맡고 있는데, 그날도 연말 모임 장소를 같이 알아봐 달라고 해서 나간 자리였어요. 그런데 수빈이가 노트북을 돌려 먼저 보여 준 건 회비 엑셀이었어요. 열네 명 중에 세 명이 올해 회비 4만 원을 아직 안 냈고, 그 칸은 수빈이가 이미 자기 돈으로 메워 둔 상태였죠. 그러더니 휴대폰으로 만세력 앱 화면을 띄우면서 "나 장성살 있대. 리더 팔자라는데 왜 나는 돈 걷는 사람이야?" 하고 묻더라고요.
저도 처음엔 웃고 넘기려고 했어요. 모임에서 기 빨리는 사람들 얘기를 오래 들어 왔는데, 제일 먼저 지치는 쪽은 늘 단톡방 공지를 쓰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수빈이가 덧붙인 말이 걸렸어요. 하린이도 장성살이래, 그것도 나랑 똑같은 토끼 글자로. 하린이는 같은 동기고 지금 모임 회장이에요. 같은 별을 갖고 한 사람은 회장, 한 사람은 총무가 됐다는 게 궁금해서 그 자리에서 두 사람 사주를 뽑아 봤어요.
장군 별 장성살이 앉는 자리
장성살은 열두 가지 신살 가운데 하나예요. 태어난 해의 띠를 기준으로 찾는데, 띠들 사이에는 셋씩 짝을 지어 한 기운을 이루는 묶음이 있고 이걸 삼합이라고 불러요. 돼지·토끼·양이 한 묶음, 원숭이·쥐·용이 한 묶음 하는 식이죠. 그 묶음의 가운데 글자가 기운이 가장 세게 모이는 자리인데, 그 글자가 내 사주에 있으면 장성살이 있다고 해요. 보통은 장군이 군대를 이끄는 별이라서 리더십, 책임감, 결단력으로 알려져 있어요. 그런데 장성살이 알려 주는 건 사람들 무리의 한가운데에 서게 된다는 것까지고, 거기 서서 무슨 일을 하게 되는지는 그 자리에 어떤 글자가 앉아 있는지 봐야 알 수 있어요.
수빈이 사주를 보니 그게 바로 보였어요. 수빈이는 1995년 돼지(亥)해에 태어났으니 장성 글자는 토끼(卯)고, 그 토끼가 태어난 달 자리에 있어요. 달 자리는 사회에서 어떤 환경에 놓이는지를 보는 곳이에요. 그런데 수빈이는 갑목(甲) 날에 태어났고, 같은 나무인 토끼는 수빈이에게 겁재에 해당해요. 겁재는 나와 같은 편이면서 내 몫을 나눠 가져가는 동료를 뜻하는 글자예요. 그러니까 수빈이의 장군 자리에는 부하 대신 동기들이 앉아 있는 셈이었어요. 사람들 한가운데 서는 건 맞는데, 그 자리에서 수빈이가 하게 되는 일은 동기들 몫을 맞춰 주고 모자란 돈을 나눠 메우는 쪽이었던 거죠. 8년 동안 수빈이가 미납 회비를 메운 돈을 그 자리에서 합쳐 보니 37만 원이었어요.
같은 토끼를 쥔 회장 하린
하린이 사주를 뽑아 보고 나서 둘의 차이가 더 분명해졌어요. 하린이는 물류 회사에서 팀장을 맡고 있는 동기인데, 수빈이와 같은 1995년 돼지해에 태어나서 장성 글자도 똑같이 토끼예요. 다른 건 그 토끼가 앉은 자리였어요. 하린이의 토끼는 태어난 날 바로 아래, 자기 자신을 보는 자리에 있거든요. 게다가 하린이는 기토(己) 날에 태어나서, 토끼는 하린이에게 편관이 돼요. 편관은 나를 누르고 규율을 세우는 힘인데, 그게 자기 자리에 있으면 그 힘을 남에게 쓰는 쪽에 서기 쉬워요. 하린이가 모임에서 하는 일을 떠올려 보니 딱 그랬어요. 하린이는 회비를 걷어 본 적도, 장소를 고른 적도 없어요. 대신 단톡방에 "이번 달 말까지 회비 안 내면 연말 명단에서 뺍니다"라고 쓰는 건 늘 하린이었고, 그 한 줄에 서운하다고 한 사람은 없었어요.
이 얘기를 들려줬더니 수빈이가 한참 엑셀만 보더라고요. 저는 수빈이한테 총무를 그만두라고 하지 않았어요. 사람들 사이에서 날짜를 맞추고 장소를 고르는 건 수빈이 장성 자리가 제일 잘하는 일이고, 실제로 8년 동안 모임이 한 번도 안 깨진 것도 수빈이 덕이었으니까요. 대신 이렇게 말했어요. "사람은 네가 모으고, 돈은 네 손에서 떼. 걷는 건 하린이 시켜." 겁재가 앉은 자리로 돈이 지나가면 내 몫부터 빠져나가거든요. 사주가 누가 회비를 끝까지 안 낼지까지 알려 주지는 않지만, 그 돈을 누가 메우게 될지는 꽤 정확하게 보여 줬어요.
수빈이는 그날 저녁에 모임 통장을 새로 만들고 관리자를 하린이로 바꿨어요. 하린이가 단톡방에 회비 공지를 올린 지 이틀 만에 미납자 세 명이 다 입금했고, 수빈이는 메워 둔 12만 원을 그대로 돌려받았어요. 연말 모임 장소는 결국 수빈이가 골랐어요. 을지로 골목의 2층 고깃집이었는데, 열네 명 중에 열세 명이 온다고 답했대요.
글쓴이
한소은
사회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