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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해살 동생이 잔금일 아침에 다시 뗀 등기부
육해살이 있으면 일이 막판마다 늦어진다는 풀이를 보고, 제 동생 수아는 두 번이나 밀린 전세 입주를 자기 팔자 탓으로 돌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잔금일 아침에 그 늦어지는 버릇이 전세금을 붙잡았고, 명식을 펴 보니 그 살이 앉은 자리가 이유를 말해 주고 있더라고요.
글쓴이 차유리
잔금일 아침 8시 12분에 수아한테서 사진이 한 장 왔어요. 출근길 지하철에서 인터넷등기소로 방금 뗀 등기부 첫 장이었는데, 맨 위에 등기신청사건 처리 중이라는 문구가 찍혀 있었죠. 저는 전날 밤에 같은 집 등기부를 수아랑 같이 봤기 때문에, 수아가 아침에 또 떼겠다고 했을 때 "어제 뗀 거면 됐어, 하루 사이에 뭐가 바뀌겠어" 하고 말린 사람이에요. 남의 집문서랑 대출 서류를 들여다보는 게 일인 제가 하루를 너무 쉽게 본 거였는데, 수아는 제 말을 듣고도 결국 한 번 더 뗐고 그 한 번에 집주인이 전날 오후 은행에 넣은 담보 대출 신청이 걸려 있었어요.
그래서 그날 아침은 길었어요. 중개사무소에 전화를 돌리고 집주인과 통화하는 동안 수아는 은행 창구 앞에서 2억 1천만 원 이체 화면을 띄워 놓고 확인 버튼을 누르지 않은 채 한 시간을 앉아 있었죠. 집주인은 다른 집 공사 대금 때문에 잠깐 쓰는 돈이라고 했는데, 결국 그 대출 신청을 거둬들이고 등기부가 깨끗해진 걸 확인한 다음에 잔금을 보내기로 하면서 입주는 또 열흘 밀렸어요. 세 번째 연기였고, 수아가 은행 의자에서 고개를 숙인 채 한 말은 "거봐, 나 육해살이라 그래"였어요.
막판마다 늦어진다는 육해살
수아가 그 말을 처음 꺼낸 건 두 번째 연기 때였어요. 집에 살던 세입자가 나갈 날짜를 못 맞추는 바람에 입주가 2주 밀렸는데, 그날 밤 수아는 만세력 앱에 자기 생일을 넣어 보다가 육해살이라는 글자를 찾아냈대요. 검색해 보니 일이 막판에 꼬이고 지연된다는 풀이가 줄줄이 나왔고 옛날 책에서는 병치레까지 엮는다는 말도 있어서, 수아는 그때부터 계약 얘기만 나오면 "나 때문에 또 밀릴 거야"를 입버릇처럼 달고 다녔죠. 저는 신살 같은 건 서류 보는 일과 상관없다고 생각해서 흘려들었는데, 은행에서 그 말을 다시 듣고 나니 그 살이 수아 명식 어디에 붙어 있는지가 궁금해졌어요.
그래서 그날 저녁에 수아 명식을 펴 봤어요. 수아는 1996년생 쥐띠고 계수 날에 태어났어요. 육해살은 열두 가지 신살 가운데 하나인데, 이 열두 신살은 내 띠가 속한 삼합 묶음을 기준으로 나머지 띠 글자마다 순서대로 역할 이름을 붙인 거예요. 쥐띠는 원숭이, 쥐, 용과 한 묶음이라 토끼 글자가 열한 번째 이름인 육해 자리에 오는데, 수아는 태어난 날의 지지가 바로 그 토끼예요. 태어난 날의 지지는 나 자신과 매일의 생활이 앉는 자리라서, 수아의 육해살은 밖에서 들이닥치는 일보다 수아가 날마다 쓰는 버릇 쪽에서 먼저 찾아야 했어요.
한 바퀴가 끝나기 직전의 자리, 수아의 토끼
육해가 지연과 소모의 살로 알려진 건 맞아요. 그런데 열두 이름을 순서대로 따라가 보면 육해 바로 다음이 화개고, 화개는 한 바퀴를 거두어 정리하는 자리예요. 그러니까 육해는 일이 거의 끝나 가는데 마감 도장은 아직 안 찍은 자리이고, 요즘은 이걸 점검이나 품질 관리처럼 마지막에 한 번 더 들여다보는 성질로 읽기도 해요. 게다가 수아의 토끼는 계수 일간에게 식신에 해당하는데, 식신은 내 안에 있는 걸 손으로 꺼내 쓰는 힘이라 몸에 밴 습관이 여기서 나와요. 육해가 식신 자리에 앉아 있으니 수아의 육해살은 수아 손이 스스로 만드는 '한 번 더'에 가깝고, 막판에 늦어진 일 가운데 상당수는 수아가 확인하느라 생긴 시간이었던 거죠.
그 생각으로 지난 일을 되짚어 보니 수아는 원래 그런 애였어요. 대학 때 조별 과제 최종본을 제출 10분 전에 다시 열어 표 번호를 고친 것도, 이삿짐 견적서에서 날짜 오타를 잡아낸 것도 수아였거든요. 두 번째 연기도 따져 보면 수아가 집주인에게 세입자 퇴거일을 문자로 다시 확인해 달라고 해서 미리 알게 된 건데, 수아는 그걸 늦어진 기억으로만 갖고 있었어요. 사주는 집주인이 언제 대출을 받을지도, 그 집이 안전한지도 말해 주지 않아요. 다만 수아처럼 생긴 명식이 계약서 앞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꽤 정확하게 보여 주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수아한테 앞으로 계약할 때 서류는 네가 쥐라고 했어요. 저는 통장을 몇 개로 나누고 문서를 언제 잡을지 계산하는 쪽이 편한 사람이라 날짜가 밀리면 이자부터 셈하는데, 수아는 밀린 날짜를 세는 대신 등기부를 한 장 더 떼는 사람이에요. 그날 은행에서 2억 1천만 원을 지킨 건 제 계산이 아니라 수아의 그 한 장이었고, 확인하다 밀린 열흘을 팔자 탓으로 세는 건 수아가 자기 손을 의심하는 일이라고 말해 줬죠. 수아는 대답 대신 휴대폰 메모장에 "잔금 당일 아침, 저녁, 다음 날 아침"이라고 적었어요.
열흘 뒤 진짜 잔금일에 수아는 은행 앞 계단에서 등기부를 또 뗐어요. 이번에는 처리 중이라는 문구 없이 깨끗했고, 저는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렸어요. 창구에서 이체 버튼을 누른 수아는 휴대폰을 가방에 넣다가 다시 꺼내더니, 메모장의 첫 줄에 줄을 하나 긋고 나서야 저를 보고 웃었어요.
글쓴이
차유리
재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