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결혼·재회
역마살 전 남자친구와 호치민 왕복 항공권
역마살 낀 남자는 평생 기다리게 한다는 엄마 말을 믿고, 저는 해외 발령을 받은 남자친구에게 가지 말라고 했다가 헤어졌어요. 3년이 지나서야 그 사람 명식에서 역마가 어디에 앉아 있는지 제대로 읽었고, 그 자리를 보고 나니 그때 제가 한 말이 왜 질 수밖에 없었는지 알겠더라고요.
글쓴이 차세린 · 김태겸
준기가 3년 만에 연락해 온 건 지난주 목요일 밤이었어요. 호치민에서 서울로 출장을 오는데 금요일 저녁에 한 시간만 볼 수 있겠냐는 짧은 메시지였죠. 헤어진 사람의 연락을 읽는 게 제 일이라서 남의 메시지라면 문장 길이, 보낸 시각, 물음표 하나까지 따져 봤을 텐데, 제 휴대폰에 뜬 그 두 줄 앞에서는 아무것도 계산이 안 되더라고요. 답장을 쓰다 지우기를 몇 번 하다가, 결국 3년 전에 제가 왜 그 사람을 보냈는지부터 다시 떠올렸어요.
그때 준기는 물류 회사 해외영업팀에 있었고, 입사 4년 차에 호치민 법인 발령 제안을 받았어요. 저한테 먼저 물어봤는데, 그 무렵 엄마가 준기 생년월일로 사주를 봐 와서는 역마살이 배우자 자리에 박혀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거든요. 엄마는 그런 남자는 밖으로만 돌아서 옆에 있는 사람이 평생 기다리다 늙는다고 했고, 저는 그 말을 반쯤 믿은 채로 준기에게 이번엔 가지 말라고 했어요. 준기는 두 주를 고민하다 갔고, 우리는 보이스톡으로 넉 달을 버티다 끝났어요. 그 뒤로 저는 역마살이라는 말만 나오면 엄마가 옳았다고 생각하며 살았죠.
닭띠의 역마, 배우자 자리에 앉은 돼지
그런데 금요일 약속을 앞두고 준기의 생년월일을 다시 넣어 봤더니, 엄마가 전해 준 말과는 다른 그림이 나왔어요. 역마살은 이동과 변화를 뜻하는 표시예요. 옛날 역참에서 갈아타던 말에서 나온 이름이라, 한곳에 붙어 있지 못하고 떠도는 팔자라는 식으로 오래 알려져 왔죠. 요즘은 같은 표시를 움직일 때 힘이 나는 기질로 읽는 쪽이 많은데, 실제로는 그 글자가 명식의 어느 자리에 있느냐를 먼저 봐야 해요.
준기는 1993년 닭띠예요. 닭이 속한 묶음에서 역마가 되는 글자는 돼지인데, 준기는 기해일에 태어나서 그 돼지가 태어난 날의 아래 글자, 그러니까 배우자를 보는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어요. 여기까지는 엄마가 들은 말이 맞았던 거예요. 다른 점은 그다음이었어요. 준기는 기토 날에 태어났는데, 기토에게 돼지는 정재에 해당해요. 정재는 내가 성실하게 손에 쥐고 관리하는 재물이고, 남자 사주에서는 오래 곁에 두는 짝을 뜻하는 글자로도 읽어요. 그러니까 준기의 명식에서 움직임을 뜻하는 글자와 곁에 둘 사람을 뜻하는 글자가 같은 자리에 같은 글자로 겹쳐 있는 거죠.
이걸 보고 나서 저는 한참 휴대폰만 들여다봤어요. 배우자 자리가 움직이는 사주라는 건 준기에게 맞는 짝이 한곳에 멈춰 있기보다 같이 움직이는 자리에 앉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읽혔거든요. 준기 사주는 태어난 시간을 몰라서 세 기둥만 보는데, 그 안에 역마가 딱 하나뿐이고 그게 하필 배우자 자리에 있어요. 일과 이동에서 오는 역마였다면 일하는 자리나 집안 자리에 있었을 텐데, 준기는 연애와 결혼 자체가 움직임과 같이 가는 사람인 거예요.
3년 전 '가지 마'라는 말의 값
그렇게 놓고 보니 3년 전 일이 다르게 보였어요. 저는 역마를 떠나는 사람의 표시로 읽고 준기를 서울에 묶으려 했는데, 이 명식에서 배우자 자리를 붙잡아 세우면 준기는 일과 짝 둘 중 하나를 내려놔야 해요. 준기는 일을 골랐고, 저는 그걸 엄마 말이 맞았다는 증거로 삼았던 거죠. 냉정하게 말하면 그때 제 "가지 마"는 이 사주를 가진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말 중에 제일 확실하게 지는 말이었어요. 역마가 배우자 자리에 있는 사람을 곁에 두는 방법은 억지로 묶어 두는 대신 같은 흐름에 올라타는 거예요.
물론 명식이 말해 주지 않는 것도 있어요. 준기가 호치민에서 누구를 만났는지, 지금 저를 다시 만나고 싶은 건지, 둘이 다시 시작하면 잘될지는 이 세 기둥 어디에도 쓰여 있지 않아요. 역마살이 바람기를 뜻한다는 말도 흔한데, 그건 준기 명식을 아무리 봐도 근거를 찾을 수 없었어요. 제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하나예요. 이 사람과 다시 시작한다면, 이번에는 혼자 기다리는 자리를 떠나 함께 오가는 자리에 서야 한다는 거죠.
금요일 저녁, 광화문 호텔 로비 카페에서 준기는 3년 전보다 많이 탄 얼굴로 앉아 있었어요. 호치민 법인에서 2년 더 있기로 했고, 내년에는 하노이 쪽 창고를 새로 여는 일을 맡는다고 하더라고요. 예전 같으면 거기서 제 얼굴이 굳었을 텐데, 저는 그 얘기를 듣다가 하노이 겨울이 얼마나 추운지 물었어요. 준기가 웃으면서 생각보다 춥다고 했고, 헤어질 때 다음 출장이 언제냐고 묻길래 저는 그 말 대신 휴대폰을 꺼내 11월 셋째 주 호치민행 왕복 항공권을 그 자리에서 결제했어요. 결제 완료 문자가 뜬 화면을 보여 주자 준기는 한참 말이 없다가, 그 주에 공항으로 마중을 나가겠다고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