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젖은 새벽 종합병원 앞 국밥집 바깥 자리에서, 흰 플리스를 입은 여성이 턱을 괴고 바라보는 사이 패딩 차림의 남성이 그녀의 뚝배기에 다진 양념을 먼저 덜어 주는 장면
연애·결혼·재회

4살 차이는 궁합도 안 본다는 말과 1월생 남자친구

"4살 차이는 궁합도 안 본대"라는 말로 제가 소개팅을 밀어붙인 후배가, 석 달 만에 남자친구가 1월생이라 사주로는 소띠라는 걸 알고 연락해 왔어요. 그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 띠가 어긋났을 때 두 사람 사주에서 무엇을 다시 봐야 하는지 얘기해 볼게요.
글쓴이 서연화 · 강시우
정민이를 우진이에게 소개한 사람이 저예요. 정민이는 서른두 살이고 종합병원 원무과에서 일하는데, 제 사촌 동생의 대학 친구라 몇 년째 연애 얘기를 들어 주던 사이였어요. 우진이는 스물여덟 살 물류회사 엔지니어로, 제가 다니는 클라이밍장에서 알게 된 친구였고요. 나이 차이 때문에 정민이가 망설이길래 저는 그때 별생각 없이 어른들 말을 빌렸어요. "네 살 차이는 궁합도 안 본다잖아. 너 개띠고 걔 호랑이띠야." 정민이는 그 말에 웃으면서 소개팅에 나갔고, 둘은 그 주에만 두 번을 더 만났어요.
그런데 석 달쯤 지난 지난주 일요일 밤, 정민이한테서 캡처 한 장이 왔어요. 우진이 생일이 1월 21일이라 선물을 고르다가 재미로 만세력 앱에 둘 생년월일을 넣어 봤는데, 우진이 띠가 호랑이가 아니라 소로 나왔다는 거예요. 그 밑에는 검색해서 찾은 글도 붙어 있었어요. 개와 소는 서로 형(刑)이라 부딪힌다는 내용이었죠. "언니, 궁합도 안 본다며. 우리 원래 안 맞는 거였어?" 저는 그 메시지를 받고 한참 답을 못 했어요. 우진이가 1월생이라는 걸 저도 알고 있었는데, 띠를 따질 때 그걸 한 번도 떠올리지 않았거든요.

네 살 터울이 맞는다는 이유, 띠의 삼합

그래서 다음 날 퇴근길에 정민이를 만나 그 말부터 같이 짚어 봤어요. 네 살 차이가 좋다는 말은 띠의 삼합에서 나왔어요. 삼합은 열두 띠 가운데 네 칸씩 떨어진 세 띠가 한 무리를 이룬다는 생각이에요. 호랑이(寅)·말(午)·개(戌)가 불의 무리, 원숭이(申)·쥐(子)·용(辰)이 물의 무리인 식으로 네 무리가 있고, 같은 무리끼리는 힘을 합친다고 봐요. 띠는 열두 해마다 돌아오니까 네 살 위나 아래는 늘 같은 무리에 들게 되고, 그래서 어른들이 네 살 차이는 따로 볼 것도 없다고 했던 거죠. 개띠 정민이에게 진짜 호랑이띠 남자친구가 왔다면 그 말이 그대로 맞았을 거예요.
문제는 사주에서 띠가 바뀌는 날이 1월 1일이 아니라 입춘이라는 데 있었어요. 1998년 입춘은 2월 4일이었고, 우진이 생년월일을 사주 엔진에 다시 넣어 보니 정축년, 그러니까 한 해 전 소띠의 끝자락에 태어난 걸로 나왔어요. 정민이는 갑술년 개띠가 맞았고요. 사주로 보면 둘은 같은 무리이기는커녕 서로 형이 되는 띠였으니까, 앱은 맞았고 틀린 건 제 말이었어요. 정민이한테 그것부터 사과했어요.
그런데 띠를 이렇게 무겁게 볼 일인지는 따로 따져 봐야 했어요. 띠는 사주 네 기둥 가운데 태어난 해의 아래 글자 하나이고, 이 해 기둥은 집안 배경이나 바깥에서 받는 첫인상처럼 그 사람에게서 제일 먼 자리로 읽어요. 그러니 띠끼리 형이라는 건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자리에서, 혹은 집안끼리 마주 앉을 때 어딘가 각이 서기 쉽다는 정도의 얘기예요. 결혼한 사람들을 오래 지켜본 제 경험으로는, 둘이 매일 마주하는 밥상의 공기는 거기서 정해지지 않더라고요. 그건 태어난 날 기둥, 그중에서도 아래 글자에서 봐요. 사주에서 배우자 자리라고 부르는 곳이 바로 거기거든요.

배우자 자리에서 다시 찾은 신진 반합

그래서 둘의 태어난 날 기둥을 나란히 놓아 봤는데, 저는 거기서 좀 웃었어요. 정민이는 임신일, 원숭이(申) 위에 태어났고, 우진이는 무진일, 용(辰) 위에 태어났어요. 원숭이와 용은 아까 말한 물의 무리에 함께 드는 짝이에요. 셋이 다 모인 건 아니니 반쪽짜리 삼합, 반합이라고 부르지만, 그 반쪽이 둘 다 배우자 자리에 앉아 있었어요. 어른들이 네 살 터울에서 찾으려던 삼합이 띠에서는 빗나갔는데, 정작 두 사람이 서로를 배우자로 보는 자리에서는 맞물려 있었던 거예요.
이 반합이 만드는 물 기운은 무토(戊) 날에 태어난 우진이에게 아내와 돈을 가리키는 재성이 되고, 정민이 쪽에서는 우진이의 무토가 자기를 다잡아 주는 남편의 별로 읽혀요. 물론 이걸로 둘이 결혼할지, 오래 갈지를 말할 수는 없어요. 둘 다 태어난 시각을 몰라서 세 기둥까지만 본 거고, 사주는 사람이 서로를 어떻게 대하느냐까지 적어 주지는 않으니까요. 다만 띠 하나 보고 헤어질 이유를 찾는 건 대문 색이 안 어울린다고 안방까지 포기하는 일이라고는 분명히 말할 수 있었어요.
정민이 얘기를 들어 보니 실제로 둘이 부딪힌 것도 바깥에서였어요. 처음 만난 날 우진이가 말을 너무 아껴서 정민이는 자기가 마음에 안 드는 줄 알았고, 지난달 정민이 친구들 모임에서도 우진이가 한 시간 동안 거의 입을 안 열어서 분위기가 어색했대요. 그런데 둘만 있을 때는 얘기가 달랐어요. 정민이가 야간 근무를 마치고 새벽에 나오면 우진이가 병원 앞에 차를 대고 기다렸다가 국밥집에 데려가는데, 정민이 그릇에 다진 양념을 먼저 덜어 주고 자기 건 그다음에 넣는대요. 정민이는 그게 너무 사소해서 띠 얘기를 듣자마자 잊고 있었더라고요.
정민이가 이 얘기를 우진이한테 전했을 때 반응은 정민이와 정반대였어요. 정민이는 개와 소가 형이라는 글을 세 번이나 읽고 잠을 설쳤는데, 우진이는 "그럼 나 2월생으로 다시 태어나 올까" 하고 웃더니, 그 주말에 정민이 친구들을 다시 만나자고 먼저 말했대요. 지난번에 말을 못 한 건 긴장해서였으니 이번엔 준비해 가겠다고요. 띠가 각을 세우는 곳이 바깥이라면, 우진이는 그 바깥을 자기가 한 번 더 메우겠다고 나선 셈이었죠.
그래서 저는 정민이한테 이렇게 말했어요. "띠는 내가 잘못 알려 준 거니까 그건 버려. 대신 새벽 국밥집에서 누가 양념을 먼저 덜어 주는지는 계속 봐." 정민이는 그 주 토요일 친구들 모임에 우진이를 다시 데려갔어요. 나중에 들으니 우진이는 그날도 말이 많지는 않았는데, 정민이 친구 하나가 자기도 1월생이라 띠를 잘못 알고 살았다는 얘기를 꺼내자 그 테이블에서 제일 크게 웃었대요. 정민이는 그날 집에 오는 길에 만세력 앱을 지웠다고 하더라고요.
사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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