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살·대운·오행
평달 윤달 한 칸에 사라진 돈복
경매 스터디에서 권리분석을 제일 잘하는 소연이는 "재성이 없는 사주"라며 3년 동안 자기 이름으로 입찰표를 한 번도 쓰지 않았어요. 그 사주가 윤달 생일을 평달로 넣어 뽑은 것이었다는 걸 알고 나서, 진짜 명식에서 소연이 돈이 어디에 있는지 다시 봤어요.
글쓴이 배윤경
지난달 셋째 주 화요일, 서울서부지법 경매 법정 앞 복도에서 소연이는 석 달 동안 들여다본 은평구 빌라 한 채의 입찰표를 스터디 막내한테 건네고 있었어요. 등기부를 몇 번이나 다시 떼 보고, 밀린 관리비까지 관리사무소에 전화해서 확인한 물건이었죠. 입찰가 칸에 넣을 숫자도 소연이가 정했는데, 입찰자 칸에는 막내 이름이 들어갔어요. "저는 재성이 없어서요. 제 이름으로 하면 돈이 붙어 있질 않아요." 소연이가 이 말을 한 게 제가 들은 것만 네 번째였어요.
저는 스터디에서 돈 계산을 맡고 있어서 이런 장면을 볼 때마다 속이 쓰려요. 경매는 물건 고르는 눈이 절반이고 나머지 절반은 그 물건을 내 이름으로 들고 나올 배짱인데, 소연이는 앞의 절반을 스터디에서 제일 잘하면서 뒤의 절반을 매번 남한테 넘겼거든요. 그날 막내는 2등과 80만 원 차이로 낙찰을 받았어요. 점심을 먹으면서 다들 소연이 덕이라고 했더니, 소연이는 웃으면서 휴대폰을 꺼내 사주 앱 화면을 보여 줬어요. 재성 0개, 불 0개라고 적힌 화면이었어요.
그런데 그 화면 맨 위에 생년월일이 "1995년 음력 8월 24일"로 들어가 있었고, 저는 그 날짜에서 젓가락을 멈췄어요. 스터디 회비 통장을 만들 때 소연이 주민등록번호 앞자리를 본 적이 있는데 951018이었거든요. 음력 8월 24일이면 양력으로는 9월 중순쯤이니 주민등록상 생일과 한 달이 비는 거예요. 물어보니 소연이는 대수롭지 않게 출생신고를 늦게 해서 그렇다고 했어요. 하지만 신고를 늦게 했다면 신고한 날이 늦어질 뿐이지, 생일 칸에 적는 날짜까지 한 달 뒤로 밀 이유는 없잖아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만세력을 열고 1995년을 찾아봤어요.
1995년의 두 번째 8월
찾아보니 1995년 음력에는 8월이 두 번 있었어요. 음력은 달이 한 번 차고 기우는 걸 한 달로 세는 달력인데, 그 한 달이 29일이나 30일이라서 열두 달을 모아도 354일쯤밖에 안 돼요. 해를 기준으로 한 1년보다 11일가량 짧으니, 그대로 두면 몇 해 만에 추석이 한여름으로 밀려 내려가겠죠. 그래서 19년에 일곱 번쯤 한 달을 더 끼워 넣는데, 그 끼워 넣은 달을 윤달이라고 하고 원래 있던 달을 평달이라고 불러요. 1995년에는 평달 8월이 끝난 뒤 윤8월이 한 번 더 왔고, 엔진에 넣어 보니 윤8월 24일이 양력 1995년 10월 18일이었어요. 주민등록번호 앞자리와 하루도 틀리지 않았죠.
소연이는 그날 저녁 어머니께 전화를 했고, 다음 날 아침 스터디 단톡방에 한 줄을 올렸어요. "윤달 맞대요. 윤달 생일은 몇 년에 한 번 오니까 그냥 평달 날짜로 쇠었대요." 어머니한테는 생일상을 언제 차리느냐의 문제였는데, 소연이가 사주 앱에서 음력을 고르고 평달·윤달 칸을 그냥 지나친 순간 다른 사람의 사주가 돼 버린 거예요. 사주는 음력 날짜를 그대로 쓰지 않고, 그날 해가 어느 절기 사이에 있느냐로 달을 정하고 날짜는 60개 이름이 차례로 도는 순서로 세거든요. 그러니 평달 24일과 윤달 24일은 이름만 같을 뿐 서른 날 떨어진 다른 날이고, 달 기둥과 날 기둥이 함께 바뀌어요. 태어난 시각은 어머니도 기억을 못 하셔서, 시주는 비워 두고 세 기둥으로만 봤어요.
평달 날짜로 뽑힌 명식은 을해년 을유월 임자일이었어요. 태어난 날의 글자가 임수, 큰 물이에요. 임수에게 재물은 물이 이기는 불인데 이 명식엔 불이 한 글자도 없었으니, 앱이 재성 0개라고 한 건 그 명식 안에서는 맞는 말이었어요. 문제는 그게 소연이 명식이 아니었다는 거죠. 윤달 날짜로 다시 뽑자 을해년 병술월 임오일이 나왔는데, 태어난 날의 글자가 똑같이 임수라서 성격 풀이는 비슷하게 나왔고, 그래서 소연이는 몇 년 동안 의심할 일이 없었던 거예요.
월간에 뜬 편재와 날 자리의 정재
진짜 명식에서 제 눈에 먼저 들어온 건 태어난 달의 윗글자 병화였어요. 임수에게 병화는 편재에 해당하는데, 편재는 월급처럼 정해진 날 들어오는 돈이 아니라 크게 움직이고 굴리고 사고파는 돈이에요. 그 편재가 태어난 달의 윗자리, 그러니까 사회에서 남들 눈에 보이는 자리에 떠 있으니, 저는 돈 되는 물건을 알아보는 눈이 밖으로 드러나는 사람이라고 읽어요. 지난 3년 동안 소연이가 골라 준 물건으로 낙찰받은 사람이 스터디에만 세 명이라는 걸 떠올리면 그 눈은 이미 증명된 셈이었어요. 게다가 태어난 날 아래 글자인 말 속에는 정화가 들어 있는데, 정화는 임수에게 정재, 내 손에 쥐고 꾸준히 지키는 돈이에요. 남의 눈에 띄는 자리에 큰돈 감각이 있고 내 자리 바로 밑에 지키는 돈이 붙어 있는 명식을, 소연이는 재성 0개로 알고 살아온 거예요.
그래서 저는 소연이한테 지난 3년을 남의 장부만 맞춰 주고 자기 장부는 한 번도 펴 보지 않은 경리처럼 살았다고 말해 줬어요. 편재는 쥐고 굴리라고 있는 그릇이라서 남한테 넘겨 주면 남의 돈이 되고, 내 이름으로 쥐어야 내 돈이 돼요. 다음 매각기일에 나올 물건은 처음부터 소연이 이름으로 넣고, 입찰가는 늘 하던 대로 소연이가 정하되 보증금 수표도 자기 통장에서 끊으라고 했어요. 낙찰이 될지, 얼마에 될지는 명식이 알려 주지 않아요. 명식이 알려 주는 건 이 사람이 돈 되는 물건을 알아보는 사람이라는 데까지이고, 그 물건을 누구 이름으로 들고 나올지는 입찰표 한 칸이 정해요.
2주 뒤 같은 법정에서 소연이는 마포구 오피스텔 입찰표를 받아 들고, 입찰자 칸 앞에서 한참 펜을 쥐고 있었어요. 막내가 옆에서 "언니, 이번에도 제가 써요?" 하고 묻자 소연이는 고개를 젓고 자기 이름을 또박또박 적었어요. 봉투를 입찰함에 넣고 돌아와서는 사주 앱에 저장해 둔 프로필을 지우고 생년월일을 다시 넣었는데, 이번에는 음력을 고른 다음 윤달 칸을 눌렀어요. 개찰은 한참 뒤 순서라 결과는 아직 몰랐지만, 소연이는 새로 뜬 화면을 저한테 내밀면서 불이 두 개 생겼다고 웃었어요.
글쓴이
배윤경
재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