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결혼·재회
월덕귀인 며느리가 떠맡은 양가 조율
추석에 처음 예비 시댁에 인사 간 후배가 "월덕귀인이라 집안이 편해지겠다"는 말을 듣고 왔는데, 연휴 나흘 동안 양가 전화를 혼자 다 받았더라고요. 그 덕담이 명식에서는 어떻게 보이는지, 결혼 전에 그 덕을 누가 어디에 써야 하는지 얘기해 볼게요.
글쓴이 김태겸
후배 다은이를 만난 건 연휴가 끝나고 첫 토요일, 망원동 국숫집에서였어요. 다은이는 서른한 살이고 제약회사 마케팅팀에서 일하는데, 대학 동아리 후배라 결혼 얘기만 나오면 꼭 저한테 먼저 들고 와요. 내년 4월에 식을 올린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날은 국수가 나오기도 전에 휴대폰 통화 목록부터 내밀더라고요. 연휴 나흘 동안 예비 시어머니와 통화한 게 열한 번이었고, 그 사이사이에 친정 엄마 번호가 끼어 있었어요. 식대를 어느 집이 얼마나 낼지, 함을 할지 말지를 두고 오간 말이 전부 다은이 입을 거쳐 갔다는 거였죠.
그래서 준호는 그동안 뭐 했냐고 물었더니, 다은이가 웃으면서 엉뚱한 얘기를 꺼냈어요. 인사 간 첫날 예비 시어머니가 다니는 철학관에서 둘 사주를 봤는데, 며느리 사주에 월덕귀인이 있어서 집안이 편해진다고 하셨다는 거예요. "어머님이 그 말을 진짜 좋아하셨어요. 그 뒤로는 뭐든 저한테 먼저 물어보세요." 다은이는 자기가 원래 이런 걸 잘 푸는 성격이라 크게 힘들진 않다고 했는데, 그 말을 하는 동안 젓가락을 세 번이나 내려놨다 들었어요. 저는 철학관 말이야 덕담이겠거니 하고 넘기려다가, 그래도 궁금해서 다은이 생년월일을 받아 사주를 뽑아 봤어요.
덕이 내 자리에 앉은 사주, 월덕귀인
월덕귀인은 태어난 달을 기준으로 정해지는 글자가 사주의 위쪽 글자(천간) 어딘가에 있을 때 붙는 표시예요. 달마다 짝이 되는 글자가 정해져 있어서, 같은 달에 태어나도 그 글자를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이 갈리죠. 흔히는 하늘이 돕는다거나 큰일이 생겨도 무사히 넘어간다는 뜻으로 알려져 있고, 명리 고전인 『삼명통회』에도 이 덕이 있으면 온갖 재앙을 풀어 해가 되지 않게 한다는 구절이 있어요. 그러니 철학관에서 집안이 편해진다고 한 말이 아주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었던 거예요.
그런데 다은이 사주에서는 이 표시가 붙은 자리가 좀 특별했어요. 다은이는 10월 17일, 가을 끝자락인 개의 달(술월, 戌)에 태어났는데, 개의 달에 짝이 되는 월덕 글자는 병화(丙)예요. 그리고 다은이가 바로 병화 날에 태어났어요. 태어난 날의 위쪽 글자는 사주에서 그 사람 자신을 뜻하는 자리라서, 다은이는 월덕을 옆에 하나 끼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월덕인 셈이죠. 『삼명통회』도 이 덕이 태어난 날의 주인 글자에 닿으면 평생 험한 일이 없다고 따로 적어 둘 만큼 이 자리를 무겁게 쳐요.
저는 여기서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덕이 다른 자리에 있으면 주변이 나를 도와주는 그림으로 읽을 수 있는데, 내 자리에 있으면 얘기가 달라지거든요. 재앙이 풀린다는 말이 다은이 사주에서는, 다은이가 있는 판에서는 싸움이 커지기 전에 다은이가 먼저 누그러뜨린다는 쪽으로 읽혀요. 그러니까 시어머니는 사람을 정확하게 본 거예요. 다만 그 덕을 두 집안이 나눠 쓰는 동안 수고는 다은이 혼자 하고 있었고, 통화 목록에 찍힌 열한 번이 다 그 몫이었죠.
결혼 앞둔 친구들 돈 얘기를 몇 년째 들어 주다 보니 생긴 버릇이 있는데, 저는 결혼 준비 기간을 계약서 특약란처럼 봐요. 그때 누가 무슨 일을 맡았는지가 결혼 뒤에는 따로 적지 않아도 기본 조항이 돼 버리거든요. 다은이 경우엔 양가 조율이 아무도 서명한 적 없는 특약으로 다은이 이름 밑에 들어가는 중이었어요. 그래서 제 질문은 자연스럽게 준호 쪽으로 넘어갔어요.
월덕 없는 준호의 통화 기록
준호는 서른네 살이고 건설사에서 현장 관리를 하는데, 다은이 말로는 순하고 화를 거의 안 내는 사람이에요. 준호 생년월일로도 사주를 뽑아 보니 봄의 토끼 달(묘월, 卯)에 태어났고, 토끼 달에 짝이 되는 월덕 글자는 갑목(甲)인데 준호 사주 위쪽 글자 어디에도 갑목이 없었어요. 월덕이 없다고 나쁜 사주라는 말은 아니에요. 다만 준호 명식에는 갈등을 먼저 누그러뜨리는 장치가 보이지 않았고, 준호의 행동도 같은 쪽을 가리키고 있었어요. 연휴 나흘 동안 준호가 결혼 문제로 자기 어머니와 통화한 건 한 번도 없었고, 이유를 물으니 "다은이가 엄마랑 더 말이 잘 통해서"라고 했대요.
같은 문제를 두고 두 사람이 정반대로 움직인 거예요. 다은이는 자기가 받으면 일이 덜 시끄러워지니까 받았고, 준호는 다은이가 받으면 일이 덜 시끄러워지니까 넘겼어요. 둘 다 틀린 계산은 아닌데, 이대로 도장을 찍으면 시댁 일은 다은이 일이라는 조항이 그대로 굳어요. 물론 사주가 알려 주지 않는 것도 있어요. 예비 시어머니가 어떤 분인지, 이 결혼이 잘 굴러갈지는 다은이 일간에 붙은 표시 하나로 알 수 없죠. 제가 명식에서 읽은 건 다은이가 갈등을 누그러뜨리는 쪽으로 타고났다는 것, 그리고 그 힘을 지금 엉뚱한 데 쓰고 있다는 것까지예요.
그래서 다은이한테 이렇게 말했어요. "네 덕은 준호랑 싸울 때 쓰라고 아껴 둬. 어머님 전화는 준호가 받는 걸로 지금 정해." 결혼하고 나면 둘 사이에도 싸울 일은 반드시 생기는데, 그때 먼저 누그러뜨릴 힘이 남아 있어야 하니까요. 양가 일정 맞추는 데 그 힘을 다 써 버리면 정작 부부 싸움에서는 다은이도 바닥난 사람이 돼요.
다은이는 그 자리에서 준호한테 카톡을 보냈어요. 식대 얘기는 이제부터 네가 어머님이랑 직접 하고, 정해지면 나한테 알려 달라고요. 준호는 그날 저녁 처음으로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사십 분을 통화했는데, 식대는 다은이가 바라던 대로 정해지지 않았대요. 그런데 다음 주에 다시 만났을 때 다은이는 그 얘기를 하는 내내 젓가락을 한 번도 내려놓지 않더라고요.
글쓴이
김태겸
관계 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