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이직·돈
신약이라 접은 창업 계획과 중화 사주의 혼자 장사
사주 앱에서 '신약'이라는 두 글자를 보고 칠 년 준비한 창업 계획을 지운 후배가 있었어요. 같은 태양 일간인데 '중화'가 나온 선배는 가게를 혼자 잘만 꾸리고 있었고, 두 사람의 명식을 나란히 놓고 보니 신약이 말하는 건 장사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하라는 쪽이었어요.
글쓴이 오세진
지은이를 다시 만난 건 지난주 목요일 밤, 성수동 골목의 작은 와인바에서였어요. 지은이는 서른셋이고, 제가 예전에 다니던 패션 플랫폼에서 액세서리 MD를 칠 년째 하고 있는 후배예요. 원래는 그날 지은이가 준비하던 빈티지 은 주얼리 온라인 숍 얘기를 하기로 했거든요. 사입처 목록이랑 첫 달 손익표까지 미리 보내 달라고 했었는데, 자리에 앉자마자 지은이가 그 파일 지웠다고 하더라고요. 왜 지웠냐고 물었더니 휴대폰을 내밀었어요. 사주 앱 화면에 지은이 이름 옆으로 '신약'이라고 적혀 있었고, 그 밑에 "자기 힘이 약해 사업보다는 조직 안에서 안정을 찾는 편이 좋다"는 문장이 붙어 있었어요.
"언니, 나 원래 약한 사주래요. 퇴직금 삼천 넣었다가 다 날리면 어떡해요."
내 편 글자의 비율, 신강과 신약
그 말을 듣고 제가 먼저 지은이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간을 받아서 명식을 다시 뽑아 봤어요. 신강과 신약은 사주에서 나를 뜻하는 글자, 그러니까 태어난 날의 천간이 얼마나 많은 편을 거느리고 있는지를 보는 말이에요. 나와 같은 기운이나 나를 낳아 주는 기운이 많으면 신강, 적으면 신약이라고 하고, 그 사이 어디쯤에서 양쪽이 비슷하게 맞서면 중화라고 불러요. 사람들은 보통 신강을 기가 센 사주, 신약을 기가 약하고 고생하는 사주로 알고 있는데, 실제로는 힘이 세고 약하다는 얘기보다 내 편과 바깥일 중 어느 쪽이 더 크냐는 얘기에 가까워요. 어떤 앱은 중화를 다시 중화신강, 중화신약으로 잘게 쪼개기도 하는데, 기준은 결국 그 비율이에요.
지은이는 병화(丙) 날에 태어났어요. 병화는 한낮의 태양 같은 불이고, 이 불의 편은 같은 불과 불을 살려 주는 나무예요. 그런데 지은이 명식을 보니 연지와 월지에 닭(酉)이 두 마리, 태어난 날 자리에는 원숭이(申)가 앉아 있었어요. 셋 다 쇠의 기운이고, 불에게 쇠는 내가 다뤄서 손에 넣는 것, 사주 말로 재성이라 부르는 돈과 물건의 자리예요. 저희 엔진으로 오행 비율을 내 보니 쇠가 47퍼센트였고, 지은이 편을 드는 불과 나무는 합쳐서 20퍼센트였어요. 나무는 아예 한 글자도 없었고요. 그러니 앱이 신약이라고 한 건 틀린 말이 아니었어요.
문제는 그다음 문장이었어요. 장사를 오래 본 제 눈에는 이 명식이 돈이 안 붙는 사주로 보이지 않았거든요. 오히려 돈과 물건이 사방에 깔려 있는데 그걸 지키는 사람은 혼자인 구조였어요. 창고에 물건은 천장까지 찼는데 문 앞에 선 직원이 한 명뿐인 가게랑 똑같아요. 물건이 모자라서 망하는 가게는 별로 없고, 사람이 물건을 감당 못 해서 망하는 가게가 훨씬 많거든요. 지은이가 칠 년 동안 MD로 잘해 온 것도 같은 이유로 설명이 됐어요. 회사라는 울타리가 지은이 대신 문을 지켜 줬으니까 지은이는 물건만 고르면 됐던 거죠.
같은 태양, 중화 사주의 민혁 선배
그 얘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민혁 선배가 떠올랐어요. 민혁 선배는 서른여섯이고, 대학 동아리 선배인데 삼 년 전에 회사를 나와서 바로 이 골목 근처에 원두 로스터리를 혼자 차렸어요. 로스팅도 혼자, 납품 배송도 혼자, 세금 신고까지 혼자 하는데 가게는 문 닫을 기미 없이 잘 굴러가요. 예전에 선배 사주를 본 적이 있어서 지은이 앞에서 다시 꺼내 봤어요.
신기하게도 민혁 선배도 병화 날에 태어난 사람이에요. 그런데 선배 명식에는 연지에 말(午)이 있어서 불이 바닥에 깔려 있고, 시간에 병화가 하나 더 떠 있고, 월지에는 토끼(卯), 그러니까 불을 살리는 나무가 있어요. 같은 계산으로 보면 선배 편을 드는 불과 나무가 47퍼센트라서 엔진은 중화라고 판정해요. 돈과 물건을 뜻하는 쇠도 있긴 한데, 선배 쪽 힘과 거의 맞먹는 크기라서 선배가 혼자 들어도 깔리지 않는 거죠. 민혁 선배가 혼자 다 해도 버티는 건 성실해서만이 아니라, 들어 올려야 할 무게와 자기 힘이 비슷하게 맞는 명식이라서예요.
그래서 지은이한테 두 사람의 차이를 그대로 말해 줬어요. 같은 태양이어도 민혁 선배는 혼자 들 수 있는 짐을 지고 태어났고, 지은이는 혼자서는 못 드는 짐을 지고 태어났다고요. 그러니 지은이가 선배처럼 퇴직금 삼천을 한 번에 재고로 바꾸고 촬영, 상세페이지, 고객 응대, 배송까지 혼자 끌어안으면 석 달 안에 물건에 깔릴 가능성이 커요. 사주가 그 숍이 몇 달 만에 손익분기를 넘길지까지 알려 주진 않지만, 어떤 구조로 시작하면 무너지는지는 꽤 분명하게 보여 줬어요.
"그럼 하지 말라는 거예요?"
"아니, 혼자 하지 말라는 거야. 넌 장사 접을 사주가 아니라 동업할 사주야."
신약 사주가 일을 키우려면 모자란 편을 바깥에서 데려와야 해요. 지은이에게 없는 나무는 나를 받쳐 주는 사람과 구조, 계약 같은 것으로 읽을 수 있는데, 마침 지은이가 스물아홉부터 지나고 있는 십 년 운에 갑목(甲), 그 나무가 하나 들어와 있었어요. 빌려 올 손이 비교적 잘 닿는 시기라는 뜻이라 저는 이걸 핑계 삼아 조건을 세 개 걸었어요. 회사는 반년 더 다니고, 사진과 고객 응대를 맡을 사람을 지분으로 붙이고, 첫 물건은 사입 대신 편집숍 위탁으로 내보내라고요. 지은이는 처음엔 그러면 내 가게가 아니지 않냐고 했는데, 제가 손익표 지운 걸 다시 살려 보라고 하자 거기에 두 칸을 새로 만들더라고요. 하나는 동업자 몫, 하나는 위탁 수수료였어요.
어제 지은이한테서 사진 한 장이 왔어요. 대학 때부터 제품 사진을 찍어 온 동기와 나눠 쓴 지분 메모, 그리고 성수동 편집숍에 반지 마흔 개를 맡기는 위탁 계약서였어요. 서명란 두 칸이 다 채워져 있었고, 사진 밑에는 "삼천은 아직 통장에 있어요"라고 적혀 있었어요.
글쓴이
오세진
사업